[크리스천 칼럼] 외모와 내용
진유철
나성순복음교회 담임목사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풍년이 든다고 말하는 것은 쌓인 눈이 얼었다가 조금씩 녹으며 스며들어 토양의 속흙이 훨씬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물맛 좋은 물의 원천도 음지다. 우리의 가슴까지 시원하게 해주는 산 속 깊은 돌샘 물은 양지의 물이 생략하는 과정을 고지식하게 거치며 어두운 지층을 통과하는 음지의 물이지, 주르르 지표를 흘러 내려 괸 빗물이 아니다. 켜켜이 흙모래를 뚫고 내린 물일수록, 가려낼 것을 스스로 가려내므로 폭넓게 정화되어 물이 정결하고 맛이 좋은 법이지만, 스며들 틈도 없이 그대로 빨리 흘러내리는 물은 소리 나는 실개울을 만들 뿐이다.
미국 최상위 1000대 기업 CEO를 조사하면 대부분은 인문학 출신이고 경제학, 경영학 전공자는 3분의 1도 안된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조지 소로스, 짐 로저스 같이 잘 알려진 유능한 CEO들도 모두 철학이나 심리학, 역사학 즉 인문학을 전공했다. 후진국일수록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 인사이트(insight·통찰력)가 법학, 정치학에서 나오고 중진국에서는 경제학, 경영학에서, 그리고 선진국일수록 인문학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을 움직이고 세상을 변화시킬 만한 핵심 인사이트는 인문학과 같이 내면을 다룰 때 더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아가 위에 언급된 주요 CEO들은 인문학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국 대학 가운데 인문학을 강조해서 명문대학으로 부상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하버드나 스탠포드 등등의 명문대학들이 최근에 인문학을 강화하는 커리큘럼을 개발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적인 수준의 대학으로 분류되는 시카고대학은 오래 전에 인문학이 강화된 커리큘럼을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시카고대학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중시하는 학제 운용으로 창의적인 졸업생을 배출했다. 지금까지 총 100여 명이 넘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런 통계는 시카고대학의 우수성과 인문학의 중요성을 방증하는 자료다.
그런데 우리 신앙에도 눈으로 보이는 외모가 있고 보이지 않는 내용이 있다. 신앙의 내용은 우리 삶에 진실한 인사이트를 주는 말씀과 성령의 충만함이고, 외모는 연수나 직분이나 업적과 같은 것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자칫 보이지 않는 내용보다는 눈에 보이는 크기와 외모에 끌려가기가 더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용이 없이 눈에 보이는 외모만으로 신앙을 대신하는 바리새인들과 같은 종교인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과 같이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가차 없이 책망하셨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어떤가? 습관적이고 세뇌된 듯 외적으로 보이는 것으로 신앙을 착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눈으로 보기에 점점 더 화려해지는 세상을 이기려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통해서 채워지는 내용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음지의 깊이가 물맛을 키우듯 팬데믹의 고난이 우리의 속사람을 말씀과 성령으로 채워주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신앙이 되기를 기도한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