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흥사단 단소(興士團 團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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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흥사단 단소(興士團 團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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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11월 8일. 그 때는 한국에서 직항편이 없어 일본서 하루 밤을 자고 동남아에서 오는 PanAm으로 갈아타고 Hawaii에서 입국수속을 했다. 하와이에서는 Seattle로 왔다가 다시 United Airline으로 바꿔타고 LA Cargo에 비로소 내리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흥사단 2층 단소 조그만 골방(다락)에 입주한 것은 그 이틀 뒤 11월 10일로 기억하고 있다. 흥사단 골수 단원이신 송종두 선생이 쓰시던 골방은 허리를 90도 굽히고 들어가면 제일 왼쪽 구석진 곳에 있었다. 사무장이신 단우 하희옥 선생은 송종두 선생이 5일 전 세상을 뜨셨다며 이부자리와 베개까지 그대로 쓰라했다.


아래층 사무실 뒷 부엌은 이층 유학생 공용이고 Refrigerator는 제법 큰 것이 하나 뿐이라 5명이 쓰기에는 복잡했다. 나는 일전 한 푼 없는 주제라 염치없이 요것 조것 훔쳐먹고 들키면 사과하고 말았다. 옆방의 Wally Paik이 소개하기를 어느 골목 Market에 가면 소꼬리를 잘라서 공짜로 준다해서 Basket에 잔뜩 얻어 와서 꼬리곰탕을 7일간 줄창 먹었다.


곧, Pizza 공장에 취직했는데, 뜨거운 화덕 Belt에서 구어져 나오는 Pizza는 정말 뜨거워 가죽장갑을 끼고 주워 담는데 이따금 기름이 튀어 팔등에 떨어지면 그 자리는 벌겋게 되어 보기 흉하였다. Jefferson길은 Crenshaw까지 전철이 있어서 공짜였고 새벽 4시에는 아무도 없는 빈 전차였다. Christmas에 직장에서 터키라는 닭고기를 줘서 흥사단 뒷 건물 2층에 사는 단우 강영문, 강영옥 선생 내외분이 성심껏 구어 주시던 것이 어제 같다.


단우 조울림 선생은 단우 백영중(작고 철강사업가)씨를 양자로 맺었고, 단우 Wally Paik은 Hawaii 가서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단우 김죽봉씨와 전흥식씨는 내외분이 건강하시고 우리들이 결혼식을 하고 오직 하나 뿐이었던 교회 Washington에 있었던 연합감리교회 최영용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한 사람들이다. 흥사단 열열 단우였을 뿐만 아니라 단우 김성권, 단우 김혜련 여사 내외분은 아드님 셋을 교육자로 양성시키셔서 작년 세상 떠난 저희 집사람을 양녀로 맺으시고 셋째 얼김은 Harvard대학 음악교수로 저희 큰 딸 Cedina를 추천하여 Harvard 법학 대학 입학을 성사시켜준 분들인데 모두 세상을 뜨셨다. 


이처럼 그리운 흥사단 단소를 허물 것이 아니라 그대로 옮기는 계획을 잡아야 할 것이고 한국정부 기대서 두고 두고 유세받을 것이 아니라 늘 수고하는 민병용씨, 홍명기씨 중심으로 합심해서 대지 마련을 해야 할 것이다. 수리는 굳이 할 필요없이 깨끗이 Paint 해서 기념관으로 보존해야 한다. 그대로 집을 잘라서 옮기면 된다. 비용은 나도 일조할 생각이고 Old Timer 김욱진씨뿐 아니라 김종국 박사까지 전화왔다. 평생 예비 단우 단대 두르고 모임에 참석한 나의 지난 생애는 부끄러운 단우였을 망정 향념은 여전하다.


한국의 장면 정부 시절 서울대학교 총장이셨고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마지막 3년 비서를 지내신 단우 장리욱 박사에게 국가훈장 한 장 추서하지 아니한 한국 정부를 나는 원망하고 있다. 윤병욱씨 그리고 손자인 Henry Chang 은 오늘도 흥사단 단대를 자랑하고 있다. 나는 장리욱 박사의 흥사단 교육을 받았다. 하희옥 선생의 성화에도 못이겼을 뿐 아니라 단비도 못내는 주제에 방값 $15이 늘 밀려 쫒겨 다녔다. 그리고 면사도 시키셨다. 댓가로 평생 처음 Paint 칠을 위, 아래층 변소청소를 하라고 했으니 변기 물탱크 뚜껑을 떨어트려서 몽땅 부수었던 경험이 있다.


나는 서울 남산 밑의 초동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중에 성악가가 된 아내 김옥자를 만났다. 아내는 언니가 있는 미국에 가서 공부하자고 권하였다. 하나님은 늘 사람을 시켜서 좋은 길로 안내하심을 느끼게 하는 또 하나의 계기(계획된 길)임을 나는 느꼈다. 논산훈련소를 거쳐 한미연합정보국 777부대에 차출됐을 때 동갑내기인 변영호를 만났다. 변영호의 모친은 당시 민주당 당수 박순천 여사였고 부친은 변희용 성균관대학 총장이셨다. 이후 변영호 집을 자주 찾게 됐을 때 박순천 여사는 LA흥사단 단소 옆에 사는 단우 이혜경 여사 이야기를 하고 나중에 소개장도 써주셨다. 


한국 유학생회 회장을 하셨던 조규창씨, 한미 News를 스스로 Type 해서 출간했고 나중에 민주당 이철승 당수의 비서가 된 진희섭씨 등 글에서 열거한 흥사단 단우들은 이제 몇 분만 남고 모두 이세상을 뜨셨다. 내가 주최한 1998년 Old Timer’s Sake 때 패기 왕성하게 참석해서 환하게 웃던 분들의 모습이 이제 그립고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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