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이렇지요] 공모(公募 public recruitment)는 共謀(conspiracy)다
신문의 광고란을 보면 공기업이나 국책연구원의 원장이나 이사장을 공모(公募)한다는 커다란 공고가 눈에 띈다. 공모제도란 널리 자격 갖춘 적임자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제도다. 아마 김대중 정부 때부터 공모제가 시작돼서 이제는 겉모양으로는 뿌리를 내린 듯싶다. 공기업의 책임자뿐 아니라 준정부기관의 대표, 어떤 때는 비상임이사 1인을 모집한다고 공고를 내는 경우도 있다. 나는 비상임이사 한 사람 초빙까지 꼭 신문공고를 내야 하는지 의문이다. 몇 백만원의 광고료를 들이고 외부인사까지 모셔다가 심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한데 실상은 내정자를 뽑는 통과의례이기 때문이다.
공모제를 통해서 최적의 인물을 뽑는다면 시간과 경비가 아까울 리 없다. 지금 우리 공모제의 속내를 들여다 보면 정치권 낙하산을 위한 위장술책이다. 예를 들면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경제정책을 연구하는 국책기관이다. 신임 홍장표 원장은 소주성, 이른바 소득주도 성장이란 도깨비 같은 정책을 추진하다가 경제수석 자리에서 밀려난 분인데, 이런 사람을 원장으로 앉혔으니 앞으로 어떻게 올바른 경제정책을 세울 수 있겠는가? 많은 경제학자들이 이 분만은 적임이 아니니 임명을 철회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정부는 묵살했다. 공개모집 시 심사위원회를 구성하지만 어용기구가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후보를 심사해서 뽑을 턱이 없다. 대개의 경우 뽑을 사람은 이미 내정돼 있고 절차는 요식행위에 그친다.
그렇다면 이렇게 낙하산으로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일은 제대로 할까? 예를 들면 한국마사회장 김우남, KDI 홍장표, 강원랜드 이삼걸, 이 세명에게는 3가지 공통점이 있다(중앙일보, 2021.6.13). 첫째는 올 상반기 취임한 기관장들이고 둘째 낙하산 임명(parachute appointments, 낙하산 임명이 하도 많으니까 우리 영자신문은 이런 한국식 영어표현을 쓰고 있다) 인사들이고 셋째 기관 운영에 큰 부담을 주든가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인물들이다. 마사회 회장은 측근을 특별 채용하려다가 직원이 만류하자 폭언을 해서 논란을 빚었고, KDI 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를 망친 주역인데 국책연구기관의 장이 되었고, Covid-19 직격탄을 맞아서 창립 22년만에 적자를 기록해서 특급 소방수를 투입해야 할 강원랜드 사장에는 민주당의 국회의원 낙선자를 임명했다. 또 강원랜드의 부사장으로는 민주당의원 보좌관 출신이 식객(食客)으로 내려 왔다.
문정부는 낙하산 왕국이다. 고용노동부 산하 기능 기술을 가르치는 한국폴리텍대학의 이사장, 운영이사, 학장 등은 모조리 민주당 낙선자 아니면 정치권을 기웃거리던 인사들의 차지가 됐다. 교육경력이나 직업훈련의 전문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정치 낭인들의 밥줄이 됐다. 정부산하 공기업이 350개쯤으로 파악되지만 준정부기관과 재투자기관 등을 합치면 몇 개인지 아무도 모른다(계속 늘어나고 있으니까). 문재인정부는 앞뒤 보지않고 '캠코더'(선거캠프, 코드인사, 더불어민주당) 출신을 곳곳에 찍어 보낸다. 정권 말이 되자 '알박기'가 더욱 기승을 부린다. 문대통령은 낙하산으로 상징되는 공수부대 출신이다. 그래서 낙하산 인사를 즐겨 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낙하산은 착지 지점이 정확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공기업의 낙하산 인사가 나라를 위태롭게 만든다.
김우룡 칼럼니스트는: 중앙고, 고려대 영문과, 서울대 신문대학원을 졸업했다. 뉴욕 컬럼비아대 언론대학원을 수료했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언론학 박사를 받았다. UC버클리 교환교수, 한국방송학회 회장을 지냈다.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석좌교수, 차관급인 제3기 방송위원, MBC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