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노년의 행복
박성림
수필가·월드쉐어USA 후원이사
요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사실 이 말은 자기 합리화라고 본다. 나이야 엄연한 현실이지만 스스로 위로하고 합리화 하는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간혹 ‘어머나 10년은 젊어 보여요, 주름살도 없으시고요…, 하는 인사를 들으면 솔직히 기분이 좋다. 그래서 ‘그럴 리가 있나요, 보시는 분의 마음이 고와서 그렇게 보이겠지요!’ 하면서 즐겁게 화답한다.
그런데 누군가가 관심있게 인사한다는 듯이 ‘많이 피곤해 보여요, 어디 아프세요?’라고 하면 공연히 기분도 나쁘고 아픈 사람처럼 종일 기분이 가라앉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앞으론 아픈 분을 만나도…, ‘아유, 많이 좋아 보여요! 라고 인사를 하리라’고 다짐한다. 내가 건네는 그 한마디가 그분의 마음에 잠시나마 위로와 격려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이를 먹으며 느끼는 것은 나이 들수록 사소한 것에 일희일비하는 것이다. 웃자고 던지는 가벼운 농담에도 쉽게 상처를 받고, 별 의미 없이 주고받는 말들이 마음에 남는 때도 있다. 얼굴에 늘어나는 주름살처럼 마음에도 주름살이 생기는 것 같아 스스로 마뜩찮다. 할 수만 있으면 밝고 맑은 생각을 하며 밝고 맑게 반응하리라 다짐해 본다.
돌아보면 20대, 30대 삶은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잡다한 기억이 살아 있다. 마치 조용하던 호수에 구정물이 올라오듯 뜬금없이 솟아나는 아픈 기억이 있다. 부모님 품에서 보낸 철부지 학창시절이나, 외로웠던 미국 유학시절의 매운 고생이며, 공부와 결혼생활을 병행했던 신혼시절, 한인이 별로 없던 중부도시에서 미국인 회사에서 일하며 겪었던 스트레스 등등…, 아픈 기억이 남아 있다. 이런 아픈 기억은 나름대로 아름다운 추억으로 상쇄가 되기도 한다.
40~60 대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 늦둥이 아들 하나 양육하며 집으로, 직장으로, 교회로,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쫓기듯 살았던 세월이다. 그 시절은 세월의 무게를 느끼지 못한 채 살았다. 그저 주어진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생활이었다.
고생 끝에 얻어지는 삶의 보람과 기쁨을 누린다. 젊은 날에 땀과 수고로 심은 씨앗이 열매가 되어 내 삶을 풍요롭게 한다. 발을 동동 구르며 뒷바라지하고 양육했던 외아들은 하나님의 종이 되어 쓰임받고 있다. 그리고 이 아들을 통해 얻은 귀한 손주 녀석과 사랑스러운 며느리를 통해 받는 위로와 기쁨은 옛날의 수고와 고생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제는 누가 뭐래도 노년이다. 그야말로 70~80마일로 달리는 바람 같은 속도의 세월을 보낸다. 세월은 빠르게 흐르지만, 감사로 가득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지금은 옛날에 느껴보지 못했던 지고 새는 하루가 감사하다. 또한, 삶의 모든 형편이 평안하다. 계절로 말하면 풍성한 열매 맺는 가을이라고 할까 아니면 육신의 살결이 살포시 양지바른 햇빛을 그리워하는 겨울의 초입이라 할까….
아무튼, 내 나이 80! 내 인생은 늦가을이나 초겨울을 서성이고 있다. 곡간에 곡식을 쌓아놓고 넉넉한 마음으로 겨울을 맞는 농부의 마음으로 오늘을 산다. 너무 아옹다옹하지 않고, 너무 욕심 부리지 않고, 너그럽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이웃과 세상을 바라보리라. 더 넉넉한 감사의 마음으로 행복의 노래로 하루하루를 가득 채우려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