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빛깔고운 독버섯
“페리클레스에게서 모든 것을 물려받았으나 그의 정직성은 물려받지 못했고, 소크라테스에게서 모든 것을 배웠으나 그의 도덕성은 배우지 못했다.” 고대 아테네의 정치인 알키비아데스에 대한 인물평이다. 빼어난 용모와 탁월한 웅변술을 지닌 그는 아테네 전성기를 이끈 페리클레스의 조카였고,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파이데라스티아(少年愛) 상대였다고 한다. 라파엘로의 명화 <아테네 학당>에 멋진 장군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그는 실제로 여러 전투에서 승리한 유능한 군인이었다.
페리클레스의 혈통, 소크라테스의 제자, 대중선동에 뛰어난 말재주, 전쟁의 달인, 조각처럼 완벽한 얼굴… 남들이 지니지 못한 성공의 조건들을 두루 갖춘 알키비아데스는 항상 ‘정의’를 부르짖는 현란한 말솜씨로 청년들의 우상이 되었지만, 무분별하고 사치스런 생활로 비판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아테네 민중은 알키비아데스를 사랑하면서도 미워했다.”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말이다. 맹목적 지지와 준엄한 비판 사이에 똬리를 튼 허울 좋은 위선자들이 지금 우리 눈앞에도 어른거리지 않는가?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 군을 이끌고 적국 스파르타의 식량기지 시칠리아를 점령하려는 야심찬 원정에 나서는데, 그즈음 헤르메스의 석상이 훼손되는 수상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것이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를 조롱하는 알키비아데스의 소행이라는 풍문이 나돌자, 알키비아데스는 전쟁터에서 아테네 법정으로 소환된다. 유죄판결을 예상한 그는 뜻밖에도 스파르타로 망명해버린다. 적을 치러 나간 최고사령관이 적군에게 투항한 것이다.
알키비아데스의 배신은 스승 소크라테스의 사형판결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외친 정의는 입술에만 매달린 정의, 제 삶과는 동떨어진 가짜 정의였다. 독버섯의 빛깔이 곱다던가? 그는 빛깔고운 독버섯, 때깔 좋은 요물(妖物)이었다. 이 시대에도 겉만 번지르르한 요물들이 정의의 헛구호로 대중의 눈을 속이고 있지 않은가?
스파르타로 도망친 알키비아데스는 사치스러웠던 아테네에서의 생활습성을 감쪽같이 숨기고, 스파르타인들의 검소한 삶을 철저히 모방했다. 카멜레온처럼 변신해 스파르타의 군사고문 자리를 차지한 알키비아데스는 그러나 배신의 발걸음을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스파르타 왕비를 유혹해 불륜을 저지르는데, 그 스캔들이 들통 나자 이번에는 동족 스파르타를 버리고 아예 그리스의 숙적(宿敵)이자 이민족인 페르시아로 넘어간다. 아테네와 델로스 동맹을, 스파르타와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차례로 배신한 그는 그리스 전체의 반역자가 되었다. 나라에서 온갖 혜택을 누리면서도 나라의 안전과 동맹의 결속을 해치는 안보와 동맹의 배신자들이 오늘도 활보하고 있지 않은가?
민주파와 과두정파가 대립하던 아테네의 혼란기를 틈타 알키비아데스는 마침내 페르시아까지 버리고 슬그머니 아테네 해군에 합류한다. 그의 부대가 스파르타 군을 격퇴하는 데 큰 공을 세우자 그의 인기는 크게 치솟았고, 아테네 민중은 그의 배신을 깡그리 잊어버렸다. 알키비아데스는 대중의 건망증 덕분에 아테네로 화려하게 귀환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뒤이은 전투에서 스파르타에 참패하자 그는 또 다시 아테네에서 버림받고 방랑의 길을 떠돌다가 누군가에게 암살당했다고 알려진다. ‘그리스 역사상 최악의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뱀처럼 날름거리는 혀로 세상 모든 일에 그럴듯한 논평을 쏟아내곤 하는 말쟁이들, 제 잘난 모습에 유난히 집착하는 나르시시스트를 우리는 신뢰하지 못한다. 그 뒤에 감춰진 삶은 솔깃한 말과 번드레한 겉모습과는 전혀 딴판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그처럼 빛깔고운 독버섯이 하나둘이 아니다. 정의를 신념처럼 외치지만 제 이익을 위해서는 온갖 추악한 뒷장난질을 서슴지 않는 신념의 배신자, ‘내 편이냐 아니냐?’를 유일한 판단기준으로 삼는 국민통합의 배신자들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사랑하는 제자 알키비아데스의 요사스런 처신으로 곤경을 맞았다지만, 오늘의 저 때깔 좋은 요물들을 끔찍이도 아끼는 누군가는 그처럼 불행한 곤경에 빠지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이우근 칼럼니스트: 변호사로 현재 숙명여대 석좌교수로 있다.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서울중앙법원장 등 법관으로 근무하던 30년 동안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문학, 철학 등 인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현재는 PEN International, Korea 회원으로서 인권위원장을,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서 문인권익옹호위원장을, 학교법인 이화학당 이사를, Seoul National Symphony Orchestra에서 명예지휘자를, FEBC(극동방송)에서 신앙 칼럼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