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행복칼럼] 십자가의 축복! 영원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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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의 행복칼럼] 십자가의 축복! 영원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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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을 앞둔 한 주간을 고난주간이라고 한다. 고난주간은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주간이다. 그리고 고난주간의 중심은 십자가다. 예수님의 고통과 고난의 절정이 십자가다. 또 우리를 향하신 주님사랑의 절정이 십자가다. 

   

십자가는 인류가 개발한 가장 고통스럽고 잔인하고 모욕적인 사형방법이다. 십자가 사형법의 핵심은 매달아 죽이는 것이다. 이 매달아 죽이는 사형법은 앗수르제국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진다. 앗수르제국이 주변 국가들을 정복할 때 저항했던 적군의 장수를 공개적으로 처형하던 것으로 시작했다. 

   

앗수르제국은 정복국의 저항 동기를 억제하기 위해 잔인한 방법을 많이 사용했다. 앗수르제국은 초기에 저항을 강하게 했던 적군의 목을 벤 다음 그 해골들을 나무에 매달아 두었다. 마을 어귀 큰 느티나무에 해골이 주렁주렁 매달린 것을 보는 사람들은 감히 저항할 수 없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며 왕들을 죽인 후 나무에 매달아 저녁까지 매달아 두었다(수10:26)고 성경은 전한다. 

   

그러다가 앗수르는 살아있는 장수를 나무에 달아 수치와 모욕 가운데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사람들이 보게 했다. 말뚝을 세우고 끝을 뾰족하게 깍아 복부를 찔러서 달아 놓았다. 당시 주변국은 이 사형법에 치를 떨었다. 바벨론과 페르시아도 이 제도를 수용하여 모반자나 괘씸한 적장들을 매달아 죽였다. 이 매달아 죽이는 사형틀이 성경 에스더에 등장한다. 아말렉의 왕족이었던 하만이 장대를 준비하여 유대인 모르드개를 매달아 죽이려 했었다.

   

헬라와 로마제국에서도 십자가 사형(매달아 죽이는 사형)제도를 이어받았다. 문화제국을 표방했던 로마는 십자가 사형제도를 노예, 반역자 이방인 범죄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시행했다. 로마시대에도 십자가는 가장 잔인하고 비참한 죽음의 형틀(요세푸스)이라고 하거나 가장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형벌(키케로)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십자가에서 사형을 당하셨다. 사형수 예수는 로마제국의 관점에서 보면 황제 숭배를 방해하는 악한 이방인이었고, 유대인 관점에서 보면 스스로 하나님이라 일컫는 불경스러운 죄인이어서 십자가 죽음이 마땅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과 제도에 충실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하였다. 그들이 십자가 사형을 집행하기 위한 채찍질(사53장)과 창으로 찌르는 모습(슥12장)은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아의 죽음과 일치한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인간들의 제도와 법률로 십자가에 사형을 당하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시면서 우리 죄를 담당하신 것은 우리 죄의 무게가 잔인한 사형감이란 것을 설명한다. 십자가에서 두 가지 얼굴을 보아야 한다. 우선 십자가에 죽어 마땅한 나의 얼굴이 있다. 또 십자가에는 죽어 마땅한 나를 품어 주시는 주님의 얼굴이 있다. 

   

고난주간에 십자가를 묵상한다. 십자가를 묵상하는 것은 십자가를 가슴과 영혼에 품고 소화하여 영혼에 녹이는 것이다. 십자가를 묵상하면 세상 어디에서도 고개를 들 수 없는 죄인이 된다. 또 십자가를 제대로 이해하면 누구에게도 당당할 수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십자가의 이중적 의미다. 인류역사상 평안과 소망을 준 사건과 상징물 중에 십자가가 최고다. 십자가를 알면 참 행복의 주인공이 된다. 십자가의 참 능력을 온전히 누리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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