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연명을 원하는 딸 vs 위암말기 80대 아버지
임영빈
임영빈 내과 원장
쉬운 대화가 아니었다. 딸은 아버지가 조금 더 곁에 있어주길 바랬고, 아버님은 이 만큼 살았다면 괜찮다고 하셨다. 노년내과 전문의로, 연세가 많으신 분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렇게 흐르게 된다. 인생이란 무엇인지, 죽음은 무엇인지에 대해 대화를 하고 가이드를 해줘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은 서두에서 소개한 가정을 예시로 의사결정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위암 치료를 3년 전 받았던 83세 아버님은 6개월 전부터 몸무게가 줄기 시작했다. 그 전부터 아버님은 위내시경을 정기적으로 받으셔야 한다는 권고를 들으실 떄마다 거절하셨다. 의사는 환자가 의사결정을 제대로 하는지 판단해 줘야 한다. 따라서, 치매 때문에 위암 치료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워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위내시경을 받는 것을 매번 잊어버리는 것인지 확인해야 하는데, 이 아버님은 정확히 위암 치료에 대해 이해하셨고, 인지력도 좋으셨으며, 위내시경을 보류하게 되면 재발시 치료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도 이해하셨다.
두번째로 확인해야 하는 것은 정신질환이다. 우울증으로 인해 생을 빨리 마감하고 싶은 것은 아닌지, 또는 마음이 착잡하여 제대로 위암 치료의 득과 실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인지 검사해야 한다. 역시나 이 아버님은 마음도 기쁘고, 원하는 것이 또렷하신 분이셨다. 196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와 오남매를 모두 다 성공시켰다며 본인은 다 이루셨다고 하셨고, 자식 키우는 것을 벗어나 다른 분야로 취미와 관심을 돌리시는 것을 권장해 보았지만 아버님은 치료받지 않을 결심이 견고하셨다.
환자가 의사결정을 할 때 의사는 4가지를 본다. (1) 현재 상황에 대한 이해 – 본인의 건강에 어떤 문제가 있고 예후가 어떤지에 대한 이해다. (2) 치료 방법에 대한 득과 실 – 현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들을 의료진에게 들었을 때 그에 대한 득과 실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3) 가치관과의 일치 – 환자가 여태 살아왔던 가치관과 일치하는 지이다. (4) 결정 – 위 사항들을 본인의 말로 구사하며 책임을 이해하고 본인이 결정을 내린다. 위 아버님은 의사 결정력을 충분히 보여주셨다. 하지만 이젠 가족이 얼마나 이해하는지 알아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판단해야 하는 단계다.
아버님의 의사 결정력이 있으시다는 것을 판단한 후, 오남매 중 법적 대리인인 따님을 외래로 초대했다. 물론 따님 또한 아버님의 이런 견고한 가치관을 이해하고 있었고, ‘고집’을 꺽지 못 하는 것에 매우 안타까워 했다. 물론 어려운 대화였지만, 따님은 자식대로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하고, 아버님은 아버님의 소신대로 말씀하시며 위내시경 검사를 하지 않기로 동의했다.
어느 덧 6개월이 지났고, 몇 주 전 아버님이 피를 토하셨다. 위암 재발의 확실한 신호였다. 식사를 하지 못하고, 헛구역질이 시작되었다. 따님과 함께 다시 방문하셨고, 증상완화 치료에 특화되어 있는 호스피스가 적절하다 생각되어 말씀을 나누고 호스피스를 시작하시기로 했다. 몇 개월 전부터 마지막 때를 준비해 놓았기 때문에 조금 더 수월했지만, 고통 중에 있는 부모를 보는 자식은 역시나 많이 아파했다. 아름다운 끝 마무리를 짓는데 도움을 주는 것도 의사가 할 일이다. 아버님은 진료를 마치고 돌아가시며 필자의 책을 여러 권 구매하시며 기부하신다고 하셨다. 아낌없이 주는, 잊지 못 할 멋진 아버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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