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추임새와 장단
김희식
(주)건축사무소 광장 상무
얼마 전 서울국립극장에서 이색적인 국악연주회가 열렸습니다. 로봇 지휘자가 등장했습니다. 이름은 '에버알식스(Ever R6)'입니다. 작동원리는 인간 지휘자의 어깨, 손목, 팔꿈치, 허리 등 몸통 곳곳에 센서를 부착하고서 인체 움직임을 3차원 좌표 위 데이터로 변환한 뒤, 이를 다시 로봇의 움직임으로 만들어 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지휘자 ‘에버’의 관절개수와 몸짓, 동작크기 등을 기술적 조건에 따라 수정하고 정돈했습니다. 이러한 단계적 ‘모션캡쳐’, '모션최적화'의 작업을 통해 작은 단위의 지휘동작들을 조합, 전체 곡의 지휘법을 완성했다고 보도됐습니다. 국악과 관련해서 아직도 국악 악기의 명칭을 모르는 것이 여럿인 필자는 가야금과 거문고를 헷갈려 하던 때도 있었지요. 거문고는 여섯 줄, 가야금은 열 두줄, 이런 식으로 외우기도 했죠.
지난 주말엔 ‘2023 보성 판소리 성지 토요 상설무대’ 공연을 참관하고 왔습니다. 보성군 회천면에 자리잡은 공연장소는 전통한옥으로 지어져 있습니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득음문(得音門)이라는 기와올린 솟을대문이 서있고, 전통한옥 공연장 천장에는 굵은 서까래들이 올려져 있습니다. 마루바닥에는 좌식의자들이 놓여 있고요. 공연 안내서를 들고 객석에 앉아 잠시 후 연주될 곡목과 소리꾼, 악기 연주자들의 이름을 짚어 봤습니다. 1) 심청가 중 젖동냥 대목, 2) 흥풀이, 3) 가야금 병창 녹음방초, 춘향가 중 사랑가, 4) 동부민요 '영남 모노래’, '치이야 칭칭나네', 5) 남도민요 사철가, 풍년노래 등으로 되어있습니다.
'보성 소리꾼' 선미숙을 비롯한 가야금 병창(김옥란), 장단(박병준), 대금(김승호), 아쟁(김민지), 무용(박현미)등 소리꾼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젊은 멤버들입니다. 그날 무대 진행자는 공연 시작 전에 국악공연 중 흥을 더해 줄 관객의 몫은 다름 아닌 ‘얼씨구’와 ‘좋다’ 등의 추임새를 가끔씩 해주는 일이라는 설명도 잊지않았습니다. '일고수 이명창’이라고 했던가요. 소리꾼 옆에서 장단을 맞추는 고수(鼓手)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말이지요. 그날 고수의 손놀림도 능란해 보였습니다. 공연 중에 소리꾼과 고수와의 컬래버가 일품이더라구요.
장단에 관한 말을 이어봅니다. "판소리 장단과 관련된 오해 중의 하나는 어떤 정서를 표현한다는 믿음이다. 예를 들면 ‘진양조'는 애련조가 깃들어 있고 서정적이며, 중모리는 ‘태연한 맛’과 안정감을 준다. 중중모리는 ‘흥취를 돋우고, 우아한 맛이 있고, 자진모리는 ‘섬세하면서 명랑하고 차분하면서 상쾌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그러나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최동현의 ‘장단과 질서’). 그 많은 감정들을 판소리라는 음악적 형식을 통해 들려주고 있다니 놀랍기도 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로봇 지휘자 ‘에버’의 경우, 정확한 박자와 템포 면에서는 훌륭한 지휘자의 역할을 할 수도 있겠지만, 판소리, 타령, 민요 등에서 느끼는 다채로운 정서들은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공연장을 나서는데 두 장의 포스터가 눈에 띕니다. 첫 번째는 다가오는 9월 열릴 ‘전주 세계 소리축제’입니다. 조상현, 신영희, 정순임, 김일구, 김수연 명창 다섯 분의 판소리 다섯바탕 완창무대입니다. 두 번째는
11월에 열릴 ‘판소리 유네스코 무형문화재 등재 20주년 기념 월드 판소리 페스티벌, 판소리 20시간 릴레이 프로젝트’ 행사인데 일반 아마추어의 판소리 경연대회 형식입니다. 이번 페스티벌을 통해 젊은 소리꾼들도 많이 배출된다면 전통 판소리 못지 않은 창작 판소리도 점차 활기를 띄겠지요.
주차장으로 향하는 솟을대문 위 ‘득음문’ 현판이 눈에 띕니다. "득음이란 음(音)을 얻었다는 말이다. 음을 얻었다 함은 음의 모든 것을 통달했다는 뜻과 같은 의미다. 음이 되기 전에는 그냥 소리이고 말이지만 이러한 말이나 소리가 예술적 문채(文彩)를 이루면, 즉 오음(五音)인 ‘궁상각치우’가 서로 감응하여 변화하면 음이 이루어진다.득음은 그저 세월따라 저절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뼈를 깍는 단련의 결과다”라는 글이 떠오릅니다(국악인 배일동 '득공' 중에서).
좋은 스승을 만나 득음한 소리꾼과 밀고 당기는 고수와의 연주를 보면서 그들의 득음에 이르는 고된 수련과정도 다시금 생각케 됩니다. 다가올 가을 공연 참관시에는 객석에 앉아 ‘얼씨구’ 추임새도 하면서 그들의 장단에 힘을 실어 볼 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