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별 수백만 목숨과 바꿨다” 싱글러브 장군 안장식
고(故) 존 싱글러브 예비역 소장의 추도식이 19일(현지 시각) 워싱턴DC 인근 알링턴 국립묘지내 교회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민석 특파원
고(故) 존 싱글러브 장군. /국제 스카이다이빙 박물관 홈페이지 캡쳐
“전쟁난다” 주한미군 철수 반대하다 퇴역
100세 일기 타계,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
尹대통령 조전 통해 “영원히 기억할 것”
“싱글러브 장군은 성공한 삶(Life of Success)과 의미 있는 삶(Life of Significance) 중에서 의미있는 삶을 산 사람입니다. (미국에 대한) 충성심, 리더십, 청렴. 그를 위한 단어들입니다.”
6·25전쟁 참전용사인 고(故) 존 싱글러브(1921~2022·퇴역 육군 소장) 전 유엔군사령부 참모장의 추도 및 안장식이 19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엄수됐다. 이날 추도사에 나선 스콧 브라우어 퇴역 육군 준장은 이날 “싱글러브 장군의 업적과 중요성은 선명하며, 그의 영향력은 거대하다”며 “우리의 책임은 이를 더 진전시켜 나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싱글러브 장군은1977년 지미 카터 대통령의 주한 미군 철군 정책에 정면으로 반대했다가, 유엔사 참모장 직책에서 해임됐었다. 당시 카터 대통령은 3만2000명에 달하는 주한 미군(지상군)을 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철군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자 그해 5월 싱글러브 소장은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미 지상군을 계획대로 철군하면, 1950년과 마찬가지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었다.
싱글러브의 이 인터뷰는 당시 필립 하비브 국무부 정무차관과 조지 브라운 합참의장이 5월 24일 카터의 특사 자격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예방하기 직전에 이뤄졌다. 이 인터뷰 내용을 접한 카터는 격노했다. 싱글러브는 이후 조지아주 포트 맥퍼슨의 육군사령부 참모장으로 보직이 변경됐다. 결국 35년간의 군 복무를 끝으로 1978년 4월 전역해야 했다.
그랬던 싱글러브 장군은 올해 1월29일 테네시주(州) 자택에서 100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포트 마이어 교회에서 열린 추도식은 유족들과 조태용 주미대사와 이경구 국방무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고인의 미망인 조앤 래퍼티 여사는 이날 “그는 한국을 정말로 사랑했다. 그는 여러분 모두를 사랑했다”며 “(한국이 그를 기억해주는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조 대사는 이날 한국 정부를 대표해 참석해 윤석열 대통령의 조전을 대독했다. 윤 대통령은 “장군께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신 전쟁 영웅이자, 한국전에서도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인 김화지구에서 대대장으로 전투를 지휘하며 대한민국을 끝까지 지켜냈다”며 “특히 장군은 유엔군사령부 참모장으로 근무하며 대한민국의 방위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큰 용기를 보여주신 강직한 군인이셨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진급과 명예보다 대한민국 국민을 전쟁으로부터 지키는 것이 군인으로서 가장 큰 보람이라는 장군의 말씀이 아직도 우리나라 국민의 가슴 속에 깊이 남아 있다”며 “대한민국은 장군과 같은 위대한 영웅들을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하겠다. 영웅들의 헌신 위에 세워진 한미동맹도 더욱 굳건히 지켜나갈 것”이라고 했다.
싱글러브는 전역 후에도 ‘더 이상 진급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 않느냐. 주한미군 철수계획에 반대하지 않았다면, 별 몇 개를 더 달 수 있었을텐데’ 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 별 몇 개를 (한국인) 수백만 명의 목숨과 바꿨다고 생각하면 이 세상에 그 이상 가치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민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