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한 손에는 성경, 한 손에는 신문을 들고 살아가야”
사진설명 : 신승훈 목사(위)와 신승훈 목사, 신분희 사모 부부(아래). 신승훈 목사는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는 성경말씀을 붙잡고 한편으로는 '한 손에는 성경, 한 손에는 신문'이라는 실천적 의미를 늘 가슴에 새기면서 선교하고 구제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목회를 하고 있다.
주님의영광교회 신승훈 목사 ··· 선교와 순종으로 살아온 감사의 목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 보다 나으니
상한 심령의 회복과 부흥, 다민족 문화선교의 산실
· 약력
- 한양대학교 상경대학 경영학과 졸업
- 81년 미국 이민
- Talbot Theological Seminary M. Div. (탈봇 신학교 목회학 석사) 수료
- 동아프리카 선교사
- Grace College of East Africa 설립, 현 이사장
- Glory Ministries in Kenya 설립, 현 총회장
- Glory Schools in Kenya 설립, 현 이사장
- 대한예수교장로회 보수합동 국제총회, 증경회장
- 주님의 영광교회 목사
- 글로리캠프 코리아 대표
“행위가 깨끗하며 주의 법대로 사는 사람은 복이 있다”(시편 119:1)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피해야 할 것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순종’이야 말로 성도(聖徒)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LA 주님의영광교회 신승훈 목사는 바로 이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즉각적으로 ‘순종’함으로써 오늘날 남가주 한인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개신교회를 이뤄냈다. 그는 ‘영성과 말씀’이라는 신앙의 균형을 강조하는 목사이며 설교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오늘도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에 대한 감격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돈을 벌기 위해 미국에 와서 하나님을 만난’사람이기에 목사로 세워진 것 조차 감사로 여기며 하루 하루 목회에 최선을 다 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 교사와 강사로 잘 나가던 그는 ‘400만 달러를 벌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땅을 사서 초·중·고등학교를 세우겠다는 목표’로 처음 미국에 왔다고 했다. 교회 역시 먼저 이민 온 분들로부터 ‘사업’에 대한 조언을 듣기 위해 출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그의 삶에 하나님께서는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찾아오셨다.
◇한 영혼을 구해야겠다 결심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이민 초기부터 열심히 돈을 벌었다고 했다. 비즈니스 감각에 남달랐던 터라 리쿼 스토어, 마켓, 전자 오락실, 비디오 렌털 사업 등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동산 투자를 통해 집도 사고 거칠 것이 없는 삶을 살던 그가 접한 신문기사가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고 만다. 일본인들이 ‘더 웨스틴 보나벤처 호텔 앤 스위트’를 4.000만 달러를 들여 그것도 캐쉬로 샀다는 기사였다. 이때 신목사는 “고작 내 꿈이 일본인들의 1/10 밖에 안 되는 구나…”하는 생각에 평생 돈을 버는 일에 전념할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이라도 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부르심에 즉각 순종하니 고민할 틈도 없이 응답도 빠르게 왔다. 은혜한인교회에 출석하고 있던 터라 김광신 당시 담임 목사에게 찾아가니 대뜸 신학교 입학을 권유한 것이다. 그런데 오순절적 신앙배경을 갖고 있던 그와는 전혀 DNA가 다른 보수신학의 요람 ‘탈봇 신학교’(Talbot Theological Seminary)로 보내진 것이다. 캘리포니아 바이올라대학교 내에 있고 미국 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철저한 보수주의 신학교다. 때문에 갈등도 있었지만 ‘영성과 은사, 말씀’에 있어서 균형 있는 신앙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신학을 하면서 은혜한인교회의 선교 디렉터가 되어 선교지를 다니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그 힘든 일을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지만 세 가지 사건이 결국 그를 케냐로 이끌었다.
첫째로는 아프리카인들의 삶을 보면서 미국에 사는 자신이 죄 짓는 것 같았다고 한다. 둘째로는 아프리카 목사가 도움을 요청하며 찾아 온 이후 아프리카 선교사들의 총 4번 방문이 있었고 노르웨이에서 비영리단체에서 활동하던 선교사 후보자가 사정이 있어 못 가게 되면서 그에게 제의가 들어왔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아프리카 목사(아프리카 목사들은 90%가 신학을 하지 않음)들이 신학과 성경을 그에게 가르쳐 달라고 한 것이다. 마음으로 “나는 재주도 없고 능력도 없지만 이들을 돕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냐”는 기도를 하고 잠이 들었는데 그 날밤 꿈을 통해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셨다. “다리가 끊어졌는데 흑인들이 어마어마하게 밀려와 지옥으로 떨어지는 겁니다.” 그는 지체 없이 순종하며 케냐로 떠났다. 아프리카 선교 중에 그는 5개의 초등학교, 2개의 중·고등학교, 의료 보건 센터, 두 개의 신학교, 교단을 세우고 100 개가 넘는 교회 건물을 짓는 등 엄청난 사역을 하게 되었다.
◇한 지붕 세 가족 교회
그럼에도 건강이 나빠졌다. 현지인들과 똑같은 음식을 먹다가 영양실조가 와서 갑상선과 청력이 나빠졌다. 잠깐 쉬려고 미국으로 돌아왔는데 “다시 못 간다”는 감동이 왔다. 이에 만약에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조건 순종할 테니 선교사 세 가정만 보내달라고 기도했다. 한달 사이에 네 가정이 채워져 선교지로 떠났다. 그리고 개척한지 6개월이 된 ‘주님의체육인교회’에서 연락이 왔다. ‘주의 만찬’을 집례할 목사가 없으니 와 달라는 요청이었다. 예배 도중 한 교인이 “신목사님께서 우리 교회로 오실 줄 믿습니다”라며 선포를 해 버렸다. 그렇게 시작한 단독목회인데 2주후 은퇴하시는 목사님께서 성구와 피아노, 자동차 등과 함께 성도 15명과 합류했다. 또 2주 후에는 일본으로 선교 가시는 목사님께서25명의 성도들을 합류시키고 떠났다. 그것도 훈련된 자들이었기에 1달만에 60명으로 불어난 교인들은 대번에 화제가 되었다. 때마침 남가주 개신교계가 분열을 거듭하던 시기라 신문에 ‘한 지붕 세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나갔고 1년만에 1000여명으로 성장했다. 그런 급속도의 성장 가운데서도 신승훈 목사는 초심을 잃지 않았다. 선교비 30%를 책정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교회는 사람이 중요하지 건물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에 우선 훈련된 일꾼들과 선교사들을 양성하는데 우선순위를 두었다. ‘순종’의 결과인지 교회를 이전할 때마다 리스 관련한 시비가 붙지도 않았고 리모델링 공사 등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불어난 교인들을 감당하고자 윌셔와 유니온의 건물을 매입했을 때도 LA 교육국에서 수용령을 내려 학교를 짓게 되었지만 순조로운 보상 작업이 이뤄져 기적과 같이 지금의 건물을 매입하였다. 이 역시 극적인 마무리가 있었는데 글로리 캠프에 참여하였던 가톨릭 신자 분이 감동을 하여 헌금함으로 부족한 부분이 완벽하게 채워지는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신승훈 목사가 강조하는 것은 ‘구원받은 자라면 예수님을 닮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말은 아주 오랫동안 들어 온 말이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난해한 경향이 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인지에 대해 우리들은 추상적 생각을 할 때가 많다. 특히 요즘처럼 말씀이 고갈되고 교파가 분열된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이에 대해 베드로 사도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라고 하였다. 그럼에도 이민교회의 특성상 이따금 일반인들은 ‘어떻게 저런 사람이 목사고 교인이며 직분자인가?’하는 의문을 종종 갖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 그는 명쾌한 대답과 해법을 우리들에게 제시하였다. 예수님을 닮아가려면 우선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대신 죽으셨고 피 값까지 지불하시면서 (나를) 사셨는데 왜 내가 주인이 되어 마음대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건가요?” 그가 처음 구원의 확신을 깨닫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도했을 때 깨달은 것이 바로 이점이었다. 이때 비로서 성령세례(방언)를 받게 되었다는 간증도 했다. 내 삶의 주인이 예수님이시니 당연히 그분께 순종하는 삶, 더 나아가 그 분의 삶을 닮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순종’이다. 하나님의 음성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 ‘일문일답’의 기도를 통해서 응답 받은 내용들을 순종하며 기꺼이 즉각 실천할 수 있는 믿음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직전 외치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단순히 그 고통을 감당하기 어려워 인간적 고뇌를 표현했다고 오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비통함의 절규라기 보다는 현재의 고통에 상응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신뢰감에서 비롯된 표현입니다.” 그 의미를 안다면 결코 내 마음대로 인생을 살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예수님의 사랑을 실현함으로써 이웃과 함께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삶을 살게 되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는 점이다. 사실 이 세상은 말씀에 순종하는 자,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자로서 살아가기가 녹록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예수님을 통한 십자가의 은혜’라는 점이다. 이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삶이다.
◇한 손에는 신문 한 손에는 성경
신승훈 목사는 인터뷰 말미에 요사이 교회가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해 오히려 사회가 교회를 변질시키는 요즈음 세대에 대한 해법으로 독일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의 말을 인용하였다. 바로 ‘한 손에 신문, 한 손에 성경을’(Man solle in der einen Hand die Bibel, in der anderen die Zeitung halten)이다. 요사이 교회는 너무 세상을 모르고 세상은 교회에 대한 편견만이 남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라지고 그냥 껍데기뿐인 거대한 건물만 남은 교회만 세상 사람들에게 비춰진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교회가 세상을 향해 뭔가를 외치고 사랑을 이야기 해도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다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과 동행 하는 삶이라면 어떠했을까? 그리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교회가 감당해야 할 일은 ‘빛과 소금’의 역할이다. 교회가 세상을 알아 어두운 곳에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빛을 비추고 소금처럼 부패하지 않게 하는 일이다. 그러나 말처럼 쉬운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승훈 목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얻은 결론은 ‘무조건 순종하면 주님의 영광’이라는 것이다. ‘순종’을 하려면 실천이 필요하다. 그래도 실천하려고 몸부림치는 교회와 목사가 있어 감사한 인터뷰 였고 신승훈 목사의 저서 제목이 왜 ‘예수 없이 못 사는 남자’(두란노)인지 충분한 이해가 되었다.
이훈구 기자 la@chosun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