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행복칼럼] 나눔을 실천한 암브로시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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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의 행복칼럼] 나눔을 실천한 암브로시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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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에서 성어거스틴의 스승으로 알려진 암브로시우스는 340년 경에 현재는 독일 트리어에 있었던 총독 관저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암브로시우스(동명이인)는 트리어에 관저가 있는 갈리아 지방 총독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고 그의 어머니는 세 자녀(마르켈리나, 사티루스, 암브로시우스)를 데리고 로마로 갔다.  

   

암브로시우스는 로마에서 아버지의 친구인 로마 황제의 근위대장이며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안치오 프로부스의 도움으로 공부를 했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정치인이 되려고 법학을 공부했고, 그 외의 여러 분야의 학문을 즉 인문학 분야, 수사학, 철학, 문학 그리고 헬라어를 공부했다.

   

변호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암브로시우스는 프로부스의 도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고 공직자로 그는 승승장구했다. 암브로시우스는 서른 살 무렵(370년) 밀라노에 지방 집정관으로 파견되었다. 당시 아리우스파와 로마 가톨릭 사이에 심각한 의견 대립이 있었다. 마침 아리우스파의 주교가 사망하자 후임 주교 인선을 두고 대립은 매우 격렬했었다. 

   

그 지역 로마 정부 책임자로 암브로시우스는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암브로시우스는 양쪽 진영 모두에서 존경을 받았으며, 복잡한 상황에 암브로시우스가 주교에 임명되었다. 그런데 그 당시 암브로시우스는 세례조차 받지 않은 초신자였고 자신은 공직생활을 계속하기를 강력히 희망했다. 하지만 그의 인품과 실력을 알았던 교황청과 로마 황실의 강력한 권고로 성직자가 되었다. 

   

암브로시우스는 374년 11월 30일에 세례를 받았고 일주일 후에 주교로 임명되었다. 주교가 되는 과정에서 암브로시우스는 자기 전 재산을 팔아 일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나머지는 교회에 헌금하였다. 주교가 된 암브로시우스는 특별 가정교사를 두고 신학을 공부했다. 그의 신학 공부를 도운 사람은 훗날 그의 후계자가 된 심플리치아누스(Simplicianus)였다. 그의 나눔과 신학 공부는 그의 겸손을 보여주는 실례다.

     

주교가 된 암브로시우스는 자신의 부족을 고백하며 수도자와 같은 청빈의 삶을 살았다. 암브로시우스의 비서로 그를 잘 알고 그의 생애를 기록한 파울리누스에 따르면 암브로시우스는 자신의 전 재산을 가난한 자들과 교회에 바치고 주일과 대축일을 제외하고는 늘 하루에 한 끼만 먹는 검소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파울리누스는 암브로시우스의 삶을 칭송하며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의 전형으로 소개한다.

   

암브로시우스 주교는 나눔과 설교로 많은 성도의 지지를 받았다.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을 막론한 민중들이 매일같이 그의 설교를 들으려고 찾아왔다고 한다. 암브로시우스는 언제나 그들을 겸손한 태도로 대하며 열심히 설교하였다. 곧 그는 서방교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가난한 자와 연약한 자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목회를 했다. 그의 강해 설교자료 나봇의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지는데, 이 설교에서 그는 의식 없는 부자를 맹공한다. 암브로시우스는 평생 약자와 가난한 자를 돌보는 목회를 했다. 암브로시우스는 진정한 나눔을 실천한 신앙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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