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삶은 쪼갤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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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칼럼] 삶은 쪼갤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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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을 가리키는 영어단어 individual은 라틴어 individuum에서 온 말이다. ‘분리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물질의 최소단위를 나타내는 그리스어 아톰 즉 원자는 ‘분리할 수 없다’는 뜻의 아토모스가 그 어원이다. 현대 물리학은 원자보다 더 작은 미립자인 쿼크
렙톤과 ‘신의 입자’라는 힉스까지 발견했지만, 분리할 수 없다는 원자의 의미는 여전히 그대로 살아있다. 이러한 어원들에 담긴 뜻을 헤아리면, 개인은 ‘분리할 수 없는(in-divide) 존재’라는 의미로 새길 수 있을 것이다. 

     동양사상은 진리의 개념을 불이(不二)로 파악한다. ‘하나’에서는 번뇌가 생기지 않는다. 언제나 ‘둘’로 나뉠 때 고뇌가 싹튼다. 하물며 한 인격
의 분열은 얼마나 비참한 불행인가? “내 안에 간디와 히틀러가 함께 들어있다.” 평생토록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헌신한 마더 테레사의 고백이다. 천사 같은 그의 마음속에 히틀러 따위의 악당이 들어앉아 있었다니, 놀랍지 않은가? 그 갈등과 번뇌를 사랑으로 녹이고 헌신으로 극복한 수녀의 삶에 머리가 숙여진다. 늘 천사 같은 절대선인도, 항상 악마 같은 절대악인도 없다. 누군가를 선인과 악인 중 어느 한쪽으로 명쾌하게 구분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먼저 자기 자신이 선인인지 악인인지부터 명쾌하게 구분하기 바란다. 빛과 어둠, 사랑과 미움, 좌절과 희망, 탐욕과 희생… 이 모든 것이 두루 뒤섞여 갈등하며 어우러지는 모순덩어리가 인간실존이다. 

   선의 경험과 악의 흔적을 한품에 지닌 인격체를 나누거나 가를 수 없다. 일찍이 두보(杜甫)가 읊었듯이, 사람에 대한 평가는 관 두껑이 덮인 뒤에야 비로소 정해지는 법이다(蓋棺事始定). 전 생애를 통전적(統全的)으로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에 대한 평가는 남북전쟁을 경계로 달라질 수 있다. 그의 정치적 목표는 연방제수호에 있었다. 연방제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참혹한 내전도, 광범위한 언론탄압도, 영장 없는 인신구속도, 흑인노예제도도 잠정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그러나 역사 속의 링컨은 노예해방과 민주주의의 선구자로 기억된다. 전쟁 이전의 노예제도 관련 발언이나 전쟁 당시의 인권탄압만을 부각시켜 인종차별주의자, 반민주적 독재자의 굴레를 씌우지 않는다. 그것은 링컨의 정치생애 전반에 대한 통전적 평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가 동학의 접주(接主)로 있을 때, 안중근 의사는 동학혁명 진압을 위해 의려군(義旅軍)에 참여했다. 그때는 백범이 혁명투쟁에 앞장선 진보파, 안 의사가 기득권체제를 수호하는 보수파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 후 고종이 단발령을 내리자 안 의사는 상투를 자르고 머리를 깎았지만, 백범은 왕명을 거스르고 상투머리를 고수했다. 이 시점에서는 안 의사가 진보 또는 개화파로, 백범이 보수 또는 위정척사파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두 분의 생애를 통전적으로 바라보는 우리는 그들을 보혁(保革)의 어느 한쪽으로 몰아붙이지 않고 모두 걸출한 겨레의 위인으로 추앙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한때 도박중독자였다는 이유로 <카라마조프 형제들>을 읽지 않을 것인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나치독일의 음악국 총재를 지냈다고 해서 <죽음과 변용>을 듣지 말아야 하는가? 하이데거가 대학총장 취임연설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히틀러 만세’를 외쳤다고 해서 <존재와 시간>을 불태워버려야 하는가? 누구의 삶인들 완전무결하겠는가? 때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허물도 섞여들기 마련이다. 4․19의거 직후인 61년 전, 독선과 실정(失政)의 책임을 지고 하야한 뒤 망명지에서 쓸쓸히 숨을 거둔 대한민국 초대대통령 이승만도 예외가 아니다. 평생에 걸친 그의 항일독립투쟁과 건국에 바친 헌신에는 애써 눈감은 채, 몇몇 그릇된 상황 속의 흠만 골라내 거기에 확대경을 들이대는 것은 온당치 않다. 공과(功過)를 함께 지닌 선인(先人)의 삶을 제멋대로 분리해서 이리 자르고 저리 나눌 수는 없는 일이다. 온 생애를 통전적으로 헤아려야 한다. 삶은 쪼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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