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여행, 우리 가족 기억창고에서 영원할 것"
노르웨이 로포텐제도의 대표적인 어촌마을 해닝스배르 전경. 로포텐제도 레이네브링겐 정상에서 바라다 본 마을. 스볼베르플로야산 정상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하기환 회장. “에구 힘들어.” 손녀들이 암석등반을 하던 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동계올림픽 개최지 릴레함메르의 시내 식당에서 온가족이 모처럼 한 화면에 들어왔다. 롬(Lom)의 유명한 스타브 목조교회를 배경으로 큰딸 내외. 절벽 사이로 빙하가 녹으며 만든 많은 폭포를 배경으로 큰딸과 손녀들만 찰칵! 큰딸 가족이 노르웨이 제2의 도시 베르겐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위에서부터)
한남체인 하기환 회장의 북유럽 3개국 가족여행기<3>
'노르웨이의 영혼' 로포텐제도 '감동'
스볼베르에서 만난 '백야(白夜)' 신기
레이네·오마을 가는길의 기막힌 풍경
2000개 돌계단 레이네브링겐 등산
피오르드가 만든 항구, 베르겐의 절경
오슬로에서 맛본 한국 '밥'과 '국' 최고
빙하 녹으며 만든 까마득한 절벽·폭포
12C 건조, 사용중인 스타브 목조교회
노르웨이 자연탐방
드디어 7월 31일. 이날은 경치가 세계적이라는 북극권 로포텐제도로 가는 날. 오슬로공항에서 프로펠라 비행기를 타고 스볼베르(Svolvær)로 향했다. 노르웨이 물가는 이미 소문나 있지만 비행기 값도 장난이 아니다. 그러나 비행 중 하늘에서 내려다본 피오르드는, 바다와 산이 사실적으로 그려진 거대한 지도를 보는 것 같다. 스볼베르공항에 내려 4일간 예약한 렌터카를 받았다. 이제부터 노르웨이 고속도로 E10을 따라 여행이 시작된다. 도로를 달리며 보이는 좌우 풍경은 과연 소문대로 멋지다.
숙소는 로포텐 특유의 로르부(rorbu). 대구잡이 어부들 숙소, 로르부는 배를 갖다 대기 편하게 바다에 접해 있다. 로르부의 모든 시설은 현대식이었다. 숙소 창밖으로 피오르드 바다와 송곳 같은 산봉우리가 한 화면에 들어온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바닷가를 산책했다. 낚싯배와 갈매기가 한가롭다. 해가 늦도록 지지 않는다는 백야(白夜)를 이곳에서 만나는 게 신기하다. 그럴 것이 로포텐제도의 위도는 대략 북위67°에서68°사이에 위치한다. 북극권과 맞물려 있는 셈이다. 우리가 미국을 떠나며 가장 만나고 싶었던 곳이 이곳 로포텐제도.
이튿날 아침 우리는 마을의 뒷산 스볼베르플로야 산행을 시작했다. 손녀들과 사위는 전문가 도움으로 스볼베르플로야 게이타(Svolværgeita) 전망대 클라이밍을 한다고 했다. 이 하이킹 코스는 스볼베르에서 약 500개 돌계단을 거쳐, 1~2시간 정도 올라야 한다. 나는 좀 늦게 오르기 시작했다. 이 계단은 네팔의 셰르파들을 초대하여 만든 것이라 한다. 오르는 도중 유명한 스볼베르게이타의 웅장한 모습을 미리 볼 수 있었다.
그림 같은 예벨포르텐(Djevelporten)을 지나기까지 가파른 오르막길이 장난이 아니다. 염소뿔이라 불리는 마지막 플로야 정상까지는 숙련된 클라이밍이 필요해 보인다. 드디어 목적한 플로야 전망대에 올랐다. 로포텐제도의 환상적인 전망이 보이는 순간 그저 주저앉아 한참을 있었다. 겹친 산봉우리들과 피오르드가 맞닿은 거대한 파노라마.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다가 가족사진을 재촉받고야 내려올 수 있었다.
오후에는 로포텐에서 가장 오래되고 잘 보존된 어촌 중 하나인 누스피오르드(Nusfjord)로 이동했다. 마을로 진입하는 도로는 호수와 화강암 산이 어울려 기막힌 절경이다. E10 도로는 이곳을 거쳐 레이네(Reine) 마을로 이어졌다. 이곳의 유일한 E10번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어디서나 말 그대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아무렇게나 사진을 찍어도 누구나 작가가 될 성싶은 풍경. 찍을 방향이나 구도를 생각할 필요도 없을 듯싶다.
드디어 레이네 마을로 들어섰다. 길가 공터나 바닷가 어부의 집 옆에 대구를 말리기 위해 걸어놓은 덕장이 보인다. 이곳 로포텐 대구는 크다. 누군가 레이네 마을을 과장되게 표현한 글을 본 적이 있다. “노르웨이의 영혼이라는 로포텐, 그중에서도 로포텐의 별은 레이네(Reine)!”. 와서 직접 보니 그 말을 실감한다. 우리는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오(Å) 마을까지 달릴 것이다. 길은 늘 바다를 끼고 있었고, 사람 사는 작은 마을은 언제나 산그늘 아래 있었다.
8월2일, 이날의 목적지는 레이네브링겐(Reinebringen) 등산. 입구에서 정상을 보니 급경사에 겁이 더럭났다. 모름지기 여행은 많이 걸어야 한다. 특히 이곳 로보텐은 걷기 위해 방문하는 곳이다. 로보텐엔 만만한 등산로가 없다. 이 산도 트레일헤드 처음부터 가파른 돌계단이 이어진다. 입구 안내판을 보니 돌계단이 2000개나 된다. 이 계단도 네팔 셰르파들 작품이다. 2년 전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트레킹을 했는데, 대부분 등산로가 돌계단으로 잘 만들어져 있었다. 셰르파들 인건비도 싸고 기술이 좋으니 초대했을 것이다.
6명이 모두 가쁜 숨을 내쉬며 한발 한발 오르기 시작했다. 오를수록 바다는 더 넓어지고, 마을은 더 작아진다. 눈은 천국이지만 발은 지옥이다. 중간에 몇 번이나 그만두고 내려갈까 생각했다. 그래도 손녀딸들에게 할아버지 건강을 보여주고 싶어 용기를 내었다. 수십 번 쉬며 온몸에 비를 맞은 듯 땀을 흘린 끝에 결국 정상에 도착했다. 피오르드와 솟대같은 봉우리, 그리고 레이네의 붉은 지붕들이 눈 아래 펼쳐진다.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미니어처 닮은 마을들. “사진보다 훨씬 멋지다”는 누군가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급경사이기에 한 번 구르면 끝날 것 같았다. 조심하다 보니 힘이 더 들었고 또 시간도 많이 걸렸다. 하산 후에는 숙소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북극의 긴 오후를 창가에서 보냈다. 낮과 밤의 경계가 흐린 로포텐의 늦게 가는 시간. 그건 우리의 삶에도 ‘천천히’를 적용해 보라는 교훈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피오르드가 만든 항구 베르겐
이튿날인 8월 3일, 아침에 비행편으로 오슬로로 돌아왔다. 오슬로 중심가에 예약된 호텔에 짐을 풀고 시내를 도보로 구경했다. 하랄 4세가 사는 왕궁과 번화가를 돌아보았다. 오슬로 시청 강당은 노벨평화상을 시상하는 곳이라 했다. 그날 저녁은 모처럼 오슬로 한국식당을 찾았다. 밥과 국을 보니 공연히 좋다. 그날은 말 그대로 ‘집밥 같은 저녁’이 되었다. 모처럼 제대로 된 한식은 여행 후반부의 피로를 덜어주는 느낌이다. 소주 한 병에 33달러 정도니 LA에 비하면 상당히 비싼 편이다.
이튿날 다시 오슬로에서 2일간 렌터카를 빌려 동계올림픽으로 유명한 릴레함메르 방향으로 북상했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자연적 국경을 이루는 산맥은 스칸디나비아산맥이다. 이 등뼈 산맥에는 빙하가 많으니 물도 많다. 따라서 노르웨이에는 폭포가 부지기수다. 지난해 아이슬란드에서도 많은 폭포, 포센(fossen)을 봤지만 노르웨이는 그것을 압도한다. 물이 넘치니 노르웨이는 수력발전으로 자급자족하고도 남아서 핀란드나 스웨덴으로 수출까지 한다. 오늘의 목적지 플롬(Flam)까지 달리는 길은 많은 부분 넘치는 물길을 따르고 있다.
가는 길에 유명한 롬(Lom)의 스타브 목조교회를 돌아보았다. 12세기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고 하는데, 못을 사용하지 않은 순수 목조교회라 했다. 물과 더불어 넘치는 나무숲의 나라이니 순수 나무로 첨탑교회를 짓는 일이 가능하겠다. 세찬 물이 넘치는 계곡을 따라 플롬으로 출발했다. 달리는 중 비도 오고 바람도 강해졌다. 간간이 사진을 찍으며 아슬아슬 어려운 산길을 지났다. 플럼 마을 마지막 내리막 좁은 외길에서 두 대의 차가 서로 만나서 꼼짝 못하게 되었다. 양쪽으로 차가 많이 줄을 서있으니 후진도 쉽지 않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누구도 경적을 울리지 않고 조용하게 그 상황에 대처한다. 거의 20분 정도 걸려 서야 길이 열렸다.
플롬에는 유명한 내뢰이피오르드(Naeroyfjord)가 있다. 피오르드 관광배가 있어 2시간에 걸친 크루즈를 즐겼다. 빙하가 녹으면서 만든 까마득한 절벽 사이로 배가 지나가고 그 절벽에 수백 개의 폭포가 보인다. 이튿날 플롬 마을에서 또 다른 유명한 관광코스인 기차를 타기로 했다. 스위스의 융프라우 같이 산악관광 열차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기차를 이용해서 해발 866미터까지 올라간다. 수 많은 폭포와 동화 같은 아름다운 산속의 마을도 지나간다. 큰 규모의 폭포가 있는 곳에 기차는 정차하고 경치를 감상시킨다.
기차를 탄 후 우리는 베르겐에 도착하여 중심가 오퍼스란 호텔에 짐을 풀었다. 이곳에서 렌터카를 반납하고 시내관광에 나섰다. 우리가 도착한 베르겐은 노르웨이 제2의 도시였고 노르웨이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였다. 깊숙이 들어간 피오르드에 위치한 이 항구는 한동안 가난했던 노르웨이를 먹여 살린 대구어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19세기까지도 노르웨이의 최대 도시였다가 현재의 오슬로에 그 자리를 빼앗겼다는 베르겐.
이 항구엔 독특한 목재건물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이곳 목조건물들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우리는 플뢰이엔 케이블카를 타고 산 위 전망대에 올랐다. 홍콩에 있는 트렘과 같은 것인데 산 정상까지 올라갔다. 정상에서는 베르겐 항구 전체가 보였다. 피오르드가 만든 항구답게 아름다웠고 바닷가 포장마차 어시장도 보였다. 하산한 후 어시장에 들려 싱싱한 해산물을 만났다. 별맛도 없었는데 역시 가격은 대단하다.
이제 베르겐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마지막이 서운한지 베르겐엔 비가 내리고 기온도 떨어져 춥기까지 하다. 8월 8일 아침 비행기로 귀국길에 올랐다. 덴마크 코펜하겐을 거쳐 LA까지. 덴마크 문화탐방. 스웨덴의 역사탐방.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르웨이에서의 자연탐방이 모두 끝났다. 따지고 보면 이번 여행에서는 언제나 시간이 소중했다. 많이 걸었고 또 많이 보았고 공부도 많이 한 시간들. 티볼리 가든, 뉘하운, 바사박물관, 비겔란 공원, 로포텐제도까지 다양한 장소를 찾았다. 이제 추억이 되어 갈 모든 풍경들은, 우리 가족의 기억창고에 소중하게 갈무리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