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판 속 참전 용사… “잊지 말아다오”
정상혁 기자
문화라이프
2021.06.24 03:09
“나라 살리는 것이 우선이었고, 내겐 그것이 애국이었다.”
6·25전쟁 참전 용사 오병하(85)씨는 황해도에서 태어났고, 인민군의 총탄에 아버지를 잃었다. 혈혈단신 임진강을 건넜다. 아사(餓死)의 고비를 매일 넘기다 육군 학도병으로 입대했다. 참극의 나날을 딛고 수십 년 뒤 그는 카메라 앞에 섰다. 주름진 얼굴, 그러나 쇠하지 않는 영웅의 눈빛이 대형 전광판에서 흘러나온다.
보훈의 달을 맞아 참전 용사들의 사진과 메시지를 삼성역·강남역·올림픽대로 등 서울 옥외 전광판 다섯 곳에 노출하는 기획이 이달까지 계속된다. 해당 전광판을 운영하는 CJ파워캐스트 주관 ‘freedom is not free’ 프로젝트다. 6·25 참전 용사 초상 촬영을 5년째 진행 중인 사진가 라미현(42·현효제)씨의 흑백 사진이 30초간 상업 광고를 밀어낸다. 주최 측은 “이들의 희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전쟁 때 생각나는 것은 딱 세 가지뿐. 눈, 추위, 그리고 배고픔”(호세 곤잘레스)이라는 고백부터 “자유는 마치 공기 같다. 우리가 참전한 것은 그 자유 때문이다”(윌리엄 맥퍼린)와 같은 노장의 증언이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춰 세운다. 백발의 탈북 국군 포로 유영복(91)씨의 메시지가 유독 가슴을 뻐근하게 한다. “참전 용사분들이 원하는 게 한 가지거든요 잊지 말아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