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어겨서라도 잡아 가둬야?”‘불법출금’ 합리화 MBC 스트레이트 논란


“법을 어겨서라도 잡아 가둬야?”‘불법출금’ 합리화 MBC 스트레이트 논란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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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탐사기획 스트레이트는 지난 20일 “김학의 ‘출국금지 수사’의 내막”이란 제목으로 김학의 전 차관의 긴급 출국금지에 법적 문제가 없으며, 따라서 ‘불법출금’수사는 이성윤 검사장 등을 겨냥한 정치적 수사라는 내용을 방송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긴급출국금지의 위법성을 호도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다른 사건도 사건번호 없었다? 김학의는 ‘사건’이 없어

‘스트레이트’는 2014년 이후 경찰과 검찰이 작성한 출국금지 요청서들을 입수해 분석했다며 “2016년 서울지방경찰청이 작성한 살인 용의자 긴급출국금지 요청서에 사건번호 란이 비어 있었지만 그대로 승인이 이뤄졌다”고 했다.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 소속이던 이규원 검사가 김 전 차관에 대해 긴급출금을 하면서 출금요청서에는 과거 김 전 차관이 무혐의 처분을 받은 중앙지검 사건 번호를, 승인요청서에는 존재하지 않는 동부지검의 내사번호를 적었는데 마찬가지의 ‘사건번호 오류’가 실무상 종종 있었다는 취지다.

이 같은 주장은 불법출금 연루 혐의로 기소된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 정책본부장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차 본부장도 사건번호 혹은 문서번호가 없는 긴급출국금지 서류를 검찰에 제출하며 실무상 김 전 차관과 같은 사례가 많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이 이들 서류를 모두 검증한 결과 김 전 차관 사건과는 명백히 달랐다. 이들 사건은 실체는 있는 상태에서 번호를 빠뜨리거나 잘못 적은 ‘기재상 오류’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김 전 차관의 경우 긴급출국금지의 근거인 형사사건 자체가 없었다.

김 전 차관 출금 서류에 적힌 ‘가짜 사건번호’는 단순한 기재상 오류가 아니라 출국금지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그 근거를 조작한 흔적이었다.그의 긴급출금 요청서에 적힌 중앙지검의 사건번호는 과거 김 전 차관이 무혐의 처분을 받아 쓸 수 없는 것이었고, 승인요청서에 적힌 동부지검 내사번호(서울동부지검 2019년 내사 1호)는 당시까지 존재하지 않는 사건이었다.

◇”지금도 임시번호 쓴다” ‘없는 사건’을 임시번호라며 합법화

이날 스트레이트 방송 내용 중 “현재도 임시번호를 사용한다”며 불법출금을 합법화한 것 또한 사건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왜곡이라고 법조계는 비판한다. 스트레이트는

검찰이 여권 위조 혐의로 체포한 박모씨 사건에서 구속영장과 출국금지 요청서에 임시번호인 ’2012임시690′이 붙어 있었으며, 인천지검이 ‘임시번호는 지금도 사용 중’이라고 답했다고 방송했다. 이 검사가 승인요청서에 붙인 동부지검의 가짜 내사번호를 ‘임시번호’로 치환해 합법화하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이 사건이 불거진 지난 1월 부천지청 정유미 부장검사가 소셜미디어에 한 주장이 사실과 다르는 취지로 다뤘다. 당시 정 부장검사는 “임시번호가 관행이라는 주장은 말도 안 된다. 검찰에 몸담고 있던 20년간 검찰에는 그런 관행 같은 것은 있지도 않고, 그런 짓을 했다가 적발되면 검사생명 끝장난다”고 했었다.

그러나 사건처리 과정에서 임시번호를 붙인 경우와, 사건 자체가 없었던 김 전 차관의 경우는 명백히 다르다고 법조계는 지적한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야간에 급하게 업무처리를 하다가 임시번호를 쓰더라도 다음날 근거를 남겨서 정식 사건번호를 받는다”며 “이런 경우에 쓰이는 임시번호와 없는 사건을 가짜번호로 만들어 낸 김 전 차관의 경우는 다르다”고 했다.

한 현직 부장검사는 “방송 사례처럼 임시번호가 구속영장까지 붙어 있었던 것은 잘한 것은 아니다. 엄밀히 따지면 사무감사 지적 대상이지만 김 전 차관의 경우처럼 형사사건 자체가 없었던 사안과는 명백히 다르다”고 했다.

◇”집에서 변기솔 쓴다고 밥먹을 때 쓰지는 않아” 임시번호 ‘사실왜곡’ 지적

정유미 부장검사도 22일 소셜미디어에서 방송 내용을 반박했다. 그는 “단언컨대 임시번호로 출국금지하는 관행은 없다”며 “그런 경우가 있다면 실수이거나 의도적인 편법이고 적발되면 징계대상”이라고 했다.

정 부장검사는 “대검이 임시번호는 지금도 사용한다고 답변한 것을 두고 스트레이트에서는 마치 내가 거짓말이라도 한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던데 심히 불쾌하다”고 했다. 그는 “임시번호라는 것은 검찰 내 전산시스템을 사용하기 위한 기술적인 방법일 뿐”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범죄 목격자가 검사실에서 의미 있는 진술을 할 경우 조서를 남겨야 하는데, 정식 사건이 아니어서 사건번호가 없으면 전산시스템에서 조서 등의 서식을 불러올 수 없기 때문에 임시번호를 딴다는 것이다. 정 부장검사는 “임시번호로 조서를 입력하는데 이후 정식으로 수사에 착수하면 입건절차를 거쳐 정식으로 사건번호를 부여받는다”고 했다.

그는 (적법절차 원칙에 따라)”출국금지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작용으로 엄격히 절차를 지켜야 한다”며 “피의자 신분도 아닌 사람을 출국금지하려고 없는 임시번호로 출국금지를 하는 경우는 듣도보도 못했다. 그게 아무리 만인의 미움을 받는 사람이라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나쁜 놈이니 법을 어겨서라도 잡아둬야 했다면 번거롭게 출국금지 같은 걸 뭐하러 하나. 그냥 납치해서 어디 골방에 묶어둬서 가두면 되지”라며 적법절차를 외면한 ‘출국금지 불가피론’의 문제를 지적했다.

정 부장검사는 “대검 답변대로 지금도 임시번호를 사용한다. 그러나 출국금지할 때는 임시번호를 사용하지 않는다”며 “스트레이트 기자들 집에서 변기솔 사용할 테지. 그러나 밥먹을 때 사용하지는 않을 거 아닌가”라고 했다. 검찰에서 임시번호를 사용한다는 사실과 출국금지시 임시번호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전혀 모순되지 않는 독립적 사실들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대법원 “수사개시 이후에야 피의자” 그 이전 긴급출금은 불법

김 전 차관에 대해 이뤄진 긴급출국금지는 출입국관리법상 ‘피의자’에 대해서만 가능하다. 검찰은 피의자가 아니었던 김 전 차관에 대한 긴급출금은 불법으로 보고 이 검사 및 차 본부장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이날 ‘스트레이트’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김 전 차관은 피의자”라고 주장했다. 대법원이 서류상 공식적으로 입건된 피의자가 아니더라도 범죄 의심이 있는 경우 피의자라는 ‘실질설’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에 김 전 차관이 형사입건되지 않았았더라도 피의자라는 것이다.

‘피의자’의 법적 정의에 대해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범죄 인지 등으로 수사가 개시돼 있을 것을 필요로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확립된 판례다. “장차 형사입건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피의자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스트레이트가 ‘실질설’이라고 주장한 판례 내용은 인지보고서 작성 이전 단계를 수사개시라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검찰이 인지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하는 등 수사를 하다 나중에 인지번호를 붙인 사건에서 피의자가 “인지보고서도 작성되지 않아 입건 전에 이뤄진 수사는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이 “인지는 검찰 내부 절차에 불과하므로 전산상 입건 이전 단계라도 실질적으로 수사가 이뤄졌다면 피의자로 볼 수 있고 이때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도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수사기관에 의해 실질적으로 범죄 혐의에 대한 수사기 이뤄진 이상 ‘인지’ 가 없었다고 문제삼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김 전 차관의 경우 수사기관이 아닌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에 의한 ‘조사’만 이뤄진 단계였다. 관련 훈령에 따르면 조사 실무를 맡은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이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에 조사 결과를 넘기고, 검찰과거사위가 그 내용을 ‘수사권고’ 해 수사기관이 수사에 착수한 이후에야 정식 수사가 개시된다. 대법원 판례, 관련 규정 해석에 따르더라도 김 전 차관은 ‘피의자’가 아니었다.

한 현직 검사는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긴급출국금지는 내사도 진입하지 않은 단계에서 국민의 거주이전의 자유를 박탈한 명백한 불법”이라며 “공영방송이 이를 두고 ‘임시번호’등의 기술적 오류로 호도하는 것은 그야말로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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