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먼저 손 내미는 '숨은 합격 신호'
일부 최상위권 대학들은 최우수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라이클리 레터'를 발송한다. MIT 캠퍼스. /MIT
라이클리 레터란 무엇인가
아이비데이 전에 도착하는 편지
최우수 학생 유치 전략 일환
주요대학 입시 결과 발표시즌이 되면 수많은 학생들이 합격 통지를 손꼽아 기다린다. 대부분의 대학이 3월 말이나 4월 초에 정시지원(RD) 결과를 발표하는데 일부 지원자들은 이보다 훨씬 일찍, 2월 중순부터 3월 초 사이에 특별한 편지를 받는다. 바로 '라이클리 레터(Likely Letter)'이다. 이 편지는 대학이 우수한 지원자를 선점하기 위해 보내는 일종의 '조기 구애 신호'라고 보면 된다.
◇라이클리 레터란 무엇인가
라이클리 레터는 대학이 공식적인 합격 결정을 내리기 전에 선발된 소수의 학생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이 편지에서 대학은 해당 학생을 합격시키겠다는 강한 의사를 밝힌다. 다시 말해 "당신이 합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공식 합격 통지서는 아니지만 프로필에 부정적인 변화가 없는 한 라이클리 레터를 받은 학생은 거의 100% 합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난이도 높은 수업을 중단하거나, 법을 어겨 체포되거나, 기타 부정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 대학은 합격 결정을 번복할 수 있다.
◇대학들이 라이클리 레터를 보내는 이유
학생들이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듯 대학들 역시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한다. 특히 엘리트 대학들이 라이클리 레터를 활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드율(yield rate)'을 높이기 위해서다.
일드율이란 대학이 합격을 허가한 학생들 중 실제로 등록하는 비율을 말한다. 이는 가장 뛰어난 지원자들이 어느 대학을 선호하는지 보여주는 핵심 지표다. 실제로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학들이 가장 높은 일드율을 기록한다.
하버드대의 일드율은 83.0%, 스탠퍼드대는 83.7%, MIT는 85.0%에 달한다.
공식 합격 발표까지 몇 달을 기다리는 동안 대학은 라이클리 레터를 통해 우수한 지원자의 관심을 선점한다. 이 편지는 "우리 대학이 당신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다. 지원자를 칭찬하는 방식으로 대학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주고, 경쟁 대학보다 우위를 점하는 것이다.
라이클리 레터에는 종종 대학이 모든 비용을 지불하는 캠퍼스 방문 초대장이 함께 제공된다. 이를 통해 대학은 지원자에게 더욱 호감을 얻고, 실제 등록으로 이어지도록 시간을 벌 수 있다.
◇라이클리 레터 vs 조기 편지
라이클리 레터와 유사하지만 조금 다른 개념으로 '조기 편지(Early Write)'가 있다. 둘의 가장 큰 차이는 확정성이다. 라이클리 레터는 합격 가능성이 높다는 의사 표시일 뿐, 공식적인 100% 합격 통지서는 아니다. 반면 조기 편지는 대학의 공식적인 합격 발표다. 조기 편지를 받은 학생은 라이클리 레터와 달리 100% 합격을 확신할 수 있다.
윌리엄스 칼리지, 앰허스트 칼리지 등 상위권 리버럴 아츠 칼리지(LAC)들이 조기 편지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조기 편지를 받은 학생이라도 부정적인 일을 저지르면 대학이 합격을 취소할 수 있다는 점은 동일하다.
◇편지에는 무엇이 적혀 있을까
스탠퍼드대가 보낸 조기 편지의 내용을 보면 대학의 의도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우리 대학은 당신의 에너지, 상상력, 재능, 그리고 진정성에 대해 영감을 받았으며, 이 조기 승인은 당신의 뛰어난 업적과 강점을 사용해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열정에 대한 찬사다. 우리는 이러한 영예를 소수의 학생에게만 수여한다. 당신에게 멋진 소식을 전하게 되어 기쁘다."
라이클리 레터 역시 비슷한 톤의 칭찬과 함께 많은 경우 대학 방문을 제안하는 내용을 포함한다. 이 편지들은 단순한 통지를 넘어, 지원자에게 '당신은 특별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심리적 전략이기도 하다.
◇어떤 대학이, 누구에게 보낼까
라이클리 레터와 조기 편지는 대학들이 공개적으로 홍보하지 않기 때문에 전체 목록을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모든 아이비리그 대학이 반드시 유치하고 싶은 지원자를 확보하기 위해 라이클리 레터를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아이비리그는 운동선수에게 이런 편지를 자주 보낸다. 학업적 역량과 운동 능력을 겸비한 드물게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대학에서 스칼라십 제안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학생 운동선수를 유인하는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물론 운동선수만이 수신자는 아니다. 학업, 예술, 리더십, 연구 등 다른 분야에서 뛰어난 학생들도 라이클리 레터를 받을 수 있는 잠재적 대상이다.
◇대학 입시의 숨은 전략
라이클리 레터는 대학 입시가 단순히 학생이 대학을 선택하는 과정이 아니라 대학 역시 학생을 선택하고 유혹하는 양방향 게임임을 보여준다. 이 편지를 받는 학생은 극소수지만, 그들에게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강력한 확신을 준다. 공식 발표일인 '아이비 데이(Ivy Day)'를 몇 주 앞두고 도착하는 이 편지는 대학이 가장 원하는 인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얼마나 전략적으로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결국 입시는 학생과 대학 모두에게 치열한 경쟁의 장이며, 라이클리 레터는 그 경쟁에서 대학이 꺼내 든 '선제공격 카드'인 셈이다.
김수현 교육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