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감성 사이] 사순시기와 바흐의 '마태수난곡'
김미향(Cecily Kim)
오클렘그룹 대표
2025년, 전 세계는 여전히 깊은 불확실성과 불안 속에 사순시기를 맞이하고 있으며 인간 존재의 고통과 회복을 성찰할 수 있는 예술의 힘은 더욱 절실하다. 바로 이 시점에서 바흐의 《마태수난곡》(J.S. Bach’s Matthäus-Passion)은 단순한 종교음악을 넘어, 고통과 용서, 인간성과 구원에 대한 심오한 묵상을 가능하게 한다. 사순시기와 성 금요일에 이 위대한 작품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한 음악감상을 넘어선 영적이고 철학적인 체험이며, 지친 마음에 깊은 위로와 치유를 전해준다.
대학시절, 나는 존경하던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 교수의 지도로 《마태수난곡》을 주제로 논문을 쓴 적이 있다. 전곡 3시간이 넘는 음악을 밤을 새워가며 반복해 들었고, 마디마다 숨어 있는 수사학적 기법과 신학적 상징, 그리고 시대적 맥락을 해석하는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그 고된 여정의 끝에서, 나는 신앙의 깊이와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이 작품에 깊은 감동과 경외를 느꼈다.
《마태수난곡》의 구조는 매우 정교하다. 이중 합창단과 두 개의 오케스트라가 서로 대화하듯 펼치는 구성은 다양한 시선과 감정을 교차시켜, 청중을 복합적인 이야기의 중심으로 이끈다. ‘Kreuzige ihn!’(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에서는 격렬한 리듬과 불협화음을 통해 군중의 분노와 집단 광기를 생생히 표현하고, ‘Erbarme dich, mein Gott’에서는 알토의 독창과 바이올린 선율이 베드로의 통회와 인간의 죄책감을 절절하게 담아낸다.
몇 해 전, LA에서 현대무용과 결합된 《마태수난곡》 공연을 다시 접했을 때, 음악은 무용수의 몸짓을 통해 고난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확장시켰고, 그 감동은 배가되었다. 시대와 장르를 초월해 이 작품은 인간의 고통을 껴안고,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킨다. 올해 사순시기, 바흐의 아름답고도 깊이 있는 선율 속에 잠시 머물러 보는 것은 어떨까. 고통의 현실 속에서도 자비와 희망을 노래하는 이 음악은, 우리의 지친 영혼을 다시 일으키는 따뜻한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