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영혼 없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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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칼럼] 영혼 없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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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 근 

변호사 / 숙명여대 석좌교수 


개혁의 횃불 뒤꼍에는 어두운 그늘이 드리우기 일쑤다. 탄핵의 촛불 뒤편에도 침침한 그림자가 숨어있었다. 시민들이 가꾸고 키워낸 자유와 민주의 열매를 가로채려고 틈을 노리는 얼치기 이념의 정치꾼들 말이다. 촛불 덕분에 권력의 울타리 안에 들어간 저들은 정부의 그릇된 정책에 바른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대통령은 자신이 임명한 세 명의 법무부장관이 자신이 임명한 검찰총장과 연달아 피 터지는 싸움을 벌여도 아무런 조정역할을 하지 못했다. 줏대 없는 관료와 정치인들은 권력형 가족 비리 의혹을 감싸기에 바빴다. 가히 ‘영혼 없는 정부’라 할 만했다. 대장동 비리 의혹 사건에서는 엉뚱하게도 그 몸통까지 바꾸려 들었다. 


지난 정부를 비난하자는 말이 아니다. 현 정부를 경고하려는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이 지지층의 박수 소리에 파묻혀있는 한, 이념·지역·계층 사이의 끔찍한 전쟁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내 편이면 아무리 무능하고 부패한 인물이라도 기꺼이 표를 던져주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극단적 편 가르기의 분열구도가 이미 구조화된 것이다. 뼈아픈 그러나 소중한 역사의 기억들이 지워지면서 어느새 우리네 집단의식 속에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악의 평범성’이 스며든 것 아닌가? 


분열과 증오의 도그마를 가르치는 진영의 멘토들, 음침한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권모술수의 잔재주꾼들, 어떻게든 권부에 연줄을 대려는 기회주의자들… 저들이 권력의 날개를 달면 이미 ‘실패한 정부’를 예약한 것이나 다름없다. 저들을 국정운영 라인에서 말끔히 치워버려야 한다. 그것이 정치적 배신이라면, 그 배신이야말로 ‘영혼 있는 정부’로 가는 출발점이 될 터이다. 


아들의 학교폭력을 감싸느라 소송전을 벌이다가 패소한 전직 검사를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하는 일, 50억 클럽 특검법안이 발의되는 날에야 중심인물인 전 특검의 자택을 뒤늦게 압수·수색하는 일 등은 영혼 없는 정부로 가는 조짐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 그 특검은 대통령의 검사 시절에 상사였다. 전 대법관, 검찰총장 등이 조사대상에 포함된 그 사건의 수사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도통 알 길이 없다. 여당의 대표 선출이나 국회의원 후보 공천에 대통령실이 개입한다는 의혹도 흘러나온다. 대통령이 후보자들에게 공천장을 내려주던 옛 시절이 떠오르는 것은 한낱 기우(杞憂)일까? 


영혼 없는 전문가, 가슴 없는 향락인… 괴테가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에서 제시한 말종 인간의 모습이다. 니체의 ‘마지막 인간’도 몰가치하고 황폐해진 최후의 인간상이다.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그 영혼 없는 말종 인간의 모습을 인간성의 마지막 단계로 보았다. 그렇다면 영혼 없는 정부 또한 마지막 단계의 정부일 텐데, 머잖은 장래에 미래세대가 그 최후의 정부를 만나지 않을까 불안하다. 


허물 벗지 못하는 뱀은 죽는다. 썩어빠진 구태를 벗지 못하는 정권도 생명력을 잃고 만다. 무엇보다 먼저 대통령 스스로가 사사로운 연고를 결연히 끊어버려야 한다. 얼마나 많은 대통령의 가족과 친인척, 밀실의 측근‧실세들이 법정과 감옥을 들락거렸던가? 윤핵관‧검찰공화국‧무속정권 따위의 비아냥이 나도는 것은 그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결국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이어진다. 야당의 전‧현 대표와 소속 의원들은 숱한 범죄혐의로 허우적거리고,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도 야당의 그것과 고만고만하다. 신뢰의 정치로 가는 길은 아직 멀다. 


대통령은 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합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정당한 권한을 가지지만, 남이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스스로는 해서는 안 될 정치적·윤리적 의무를 함께 지닌다. 막사이사이 전 필리핀 대통령은 비리 의혹에 휩싸여 결백을 호소하는 동생을 이렇게 훈계했다. “우리 스스로 깨끗하다고 자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민이 우리를 깨끗하다고 믿어주는 데까지 이르지 않으면 안 된다.” 대통령과 그 주변의 자세도 이와 같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또 한 번의 ‘영혼 없는 정부’로 끝나게 될 불행이 벌써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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