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비행기는 왜 왼쪽문으로만 탑승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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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비행기는 왜 왼쪽문으로만 탑승할까

웹마스터

이보영

한진해운 전 미주지역본부장


조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올 때, 우리 모두는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왔다. 여권, 항공권, 이민서류, 이민가방 등 복잡한 탑승절차를 거친 후, 환송나온 가족들, 친지들,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정신없이 게이트(Gate)를 빠져나와 비행기에 올랐을 것이다.


지정된 좌석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며, 아 ~ 정든 조국을 드디어 떠나 낯선 땅으로 날아 가는구나! 감회에 젖어 눈시울이 붉어지거나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기도 했을 것이다. 그때를 회상해 보니 비행기의 왼쪽문으로 탑승한 것 같다. 가끔 뉴스에 등장하는 대통령의 해외순방 출국장면도 전용기의 왼쪽문 앞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그러고 보니 어떤 비행기든지 승객의 탑승은 왼쪽문으로만 하는데, 그 이유가 궁금하다.


비행기에 탑승하는 방법은 크게 3가지다.

(1) 비행기 자체의 계단으로 탑승하는 방법. 주로 소형기는 문 안쪽이 계단이며 밑으로 내리면 스탭이 된다.

(2) 계단차량(Step Car)을 이용해 탑승하는 방법. 작은 공항, 또는 터미널에서 떨어 진 주기장에서 탑승할 때, 램프버스로 승객들을 비행기까지 실어 나른 후, 스탭카를 이용해 오르는 방법이다.

(3) 탑승교(Boarding Bridge)를 항공기 문에 연결하여 수평보행으로 탑승하는 방법. 대부분 현대식 공항은

‘보딩 브릿지’가 터미널마다 여러 개 설치되어 주로 대형기, 중형기에 연결하여 사용한다.


그런데 이들 3가지 탑승 방법 모두가 비행기의 왼쪽문으로 탑승하거나 내리거나 한다. 비행기의 오른쪽문은 단지 기내식사, 기내물품 등을 싣고 내리는데만 사용되고 있다. 필자는 항공사에서 17년, 해운사에서 15년을 일하며 청·장년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항공사의 관행과 사용했던 용어들이 대부분 해운사의 관행들과 동일하거나 비슷하다는 것이 신기했다. 비행기와 배의 어떤 연결고리, 즉 비행기가 배의 후손격이라는 것을 암시해 주는 듯했다.


배는 하늘을 날 수 없고, 비행기는 바다에 떠다닐 수가 없는 전혀 다른 운송수단인데,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둘의 공통점은 ‘길을 찾는 방식’이 같았다. 배의 항해사들은 망망대해에서 별을 보거나 나침반을 이용해 방향을 잡아 목적항을 찾아갔다. 초창기의 비행기도 별과 나침반을 이용해 목표 공항으로 날아갔다. 또 배는 ‘바람과 파도’를 이용하며 항해했는데, 비행기도 ‘공기의 흐름’을 활용하는 공통점이 있다. 배의 역사는 수천년에 이르지만, 항공기는 고작 120년의 역사이다 보니, 비행기 조종을 위해서는 배의 항해술과 지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오랜시간 습득된 선박의 경험이 비행기로 전수되면서 용어나 관행이 자연스럽게 넘어온 것이다.


항구를 영어로 ‘Port’라 하고, 공항을 ‘Air-port’라 한다. 독일어도 항구를 ‘Hafen’이라 하고, 공항은 ‘Flug-

hafen’이라 한다. 모두 배가 정박하는 항구가 어근(語根)이다. 배의 조타실과 비행기의 조종실도 공히 ‘Cockpit’이라 하고, 배의 방향타와 비행기의 방향타를 ‘Rudder’라고 부른다. 배의 선장, 선원, 비행기의 기장, 승무원을 공히 ‘Captain, Crew’, 입항허가증 ‘Pass-port’도 항공에서 여권(旅券)으로 사용하고 있다.

항해와 항공 분야에서 좌현(左舷)은 ‘Port’, 우현(右舷)을 ‘Starboard’라고 부른다. 보통 좌, 우는 Left & Right를 사용해야 맞는 말인데, 선박과 항공 분야에선 Port(左)와 Starboard(右)를 사용한다. Starboard에서 Star는 ‘별’이지만, 항해에서는 ‘방향을 조절한다’는 ‘Steer’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해적 바이킹들의 배를 보면 배의 방향노(Steering Oar)가 모두 우현 뒷쪽에 붙어 있다. 팔 힘으로 조절하던

방향노는 강한 팔이 필요했는데, 예나 지금이나 오른손잡이가 인구의 90%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비교적 수심이 얕은 항구에 배를 접안시키려면 배의 오른편엔 방향노가 옆으로 튀어나와 밑으로 길게 뻗어 있어서 정박이 불가능하니 좌현(Port)으로만 정박할 수 밖에 없었다. 배를 좌현으로 항만에 접안시키고 사람도 화물도 오르내렸던 오랜 역사가 있으니, 배의 후손격인 비행기의 접안(탑승 방향) 역시 선박의 관행에서 도래된 것이다. 비행기에 탑승할 때, 왜 왼쪽문을 사용하는지 그 궁금증을 배를 통해 찾아 보았다.


인류가 비행 구조물을 만들어 처음 실험을 추구했던 장소는 주로 넓은 평지의 해변가였다. 이때 필요한

용어나 정보들을 해변에 정박했던 선박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쉬웠고 소통도 용이했을 것이다. 오른손잡이가 많은 세상, 그들 오른손으로 휘젓던 배의 방향노, 방향노 때문에 좌현 접안을 하게 된 배, 그 관행을 이어받은 비행기, 그리고 오늘도 비행기의 왼쪽문(Portside Door)으로 탑승하는 우리들…, 오른손잡이에서 출발한 연결고리들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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