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원함에서 행함으로 가려면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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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원함에서 행함으로 가려면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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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유철 목사(나성순복음 교회 담임) 


성경에서 무서운 저주의 상징처럼 등장하는 나병은 국부적인 고통을 못 느끼는 병이다. 


뜨거운 불에 손가락이 타는데도 통증을 못 느끼는 것은 저주이지 축복이 아니다. 육체가 살아있으면 병과 싸우며 아파하지만, 죽으면 몸에서 병이 다 나와 아픔도 갈등도 없다. 


이처럼 삶에서 갈등하며 아파하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살아있음을 감사할 수 있게 해주는 역설이 된다. 이것은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영이 죽어 있으면 고민 없이 죄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수를 믿어 영이 살아나면 죄에 대해 갈등하게 되고 아파하며 고통을 느끼게 된다. 갈등은 구원받아 거듭난 사람의 증거이다. 사도 바울은 신앙생활이 깊어질수록 갈등도 깊어졌다. 


마음의 원함은 거룩함인데 육체의 소욕은 그렇지 않은 자신을 향해 곤고한 자라고 아파하며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건져낼 수 있느냐고 외친다. 그런 깊은 갈등의 과정을 지나면서 예수님의 은혜를 더 깊이 체험하게 되고 도우시는 성령님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신앙생활은 정답을 아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 갈등하는 연단을 통해서 믿음이 확실해지는데, 이것은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다(벧전1:7).


남미를 점령한 스페인의 피사로는 168명의 군인과 선원들로 최소 60만명에서 600만명쯤 되는 잉카제국을 멸망시켰다. 학자들은 유럽인에 의해 전달된 ‘병균’ 때문에 잉카제국이 패망했다고 말한다. 당시 유럽인들은 집 안에서 소, 말, 돼지, 양, 염소, 닭, 개와 오리 등 20여 종의 동물들과 함께 생활할 때였다. 


동물들은 병균을 사람에게 옮기는 숙주 아닌가? 이런 동물들과 수 천 년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항체가 생겼지만, 당시 남미 원주민들은 항체가 거의 없는 무방비 상태였었다. 그러니 유럽에서 온 병균에 감염되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옛날 한국이 가난하여 흙바닥에서 구르듯 놀고 큰 사탕 하나를 한 반의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빨아먹던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요즘 유행하는 아토피나 A형 간염 같은 것이 거의 없는 것도 같은 이유인 듯하다. 비위생적인 것 같았던 상황이 오히려 우리를 더욱 건강하게 했다는 역설이 여기에 있다.


오늘날 현대인의 신앙은 모든 것을 입맛대로 맞추어주는 편리함을 추구한다. 예배에서는 성경을 화면으로 다 올려주고, 찬양은 찬양팀이 다 불러주고, 봉사도 편하게 돈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힘든 선교나 전도는 아예 미련한 것으로 여긴다. 이렇게 과정을 두려워 피하는 만큼 신앙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순교는커녕 조그만 핍박이나 어려움조차도 이겨내기가 버겁다.


원함은 크고 확실하지만 행함이 없어 하나님을 체험하지도 못하고 간증도, 열매도 없는 신앙생활로 전락하고 있다. 정답 아는 것을 신앙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교리를 믿거나 세뇌된 믿음에서 나오는 원함으로 만족해서도 안 된다. 


원함에서 행함으로 가기 위해서는 자신과 원수마귀와 싸워 이기는 과정을 지나게 됨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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