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산책, 삶의 산책] 허술한 투표권, 이래도 좋은가?

홈 > 로컬뉴스 > 로컬뉴스
로컬뉴스

[정치 산책, 삶의 산책] 허술한 투표권, 이래도 좋은가?

웹마스터

최석호

(전)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

(전) 어바인 시장 


미국이란 나라는 민주주의의 표본이요 정의의 나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 정치·경제·사회 문제를 하나씩 분석해 보면 미국의 내면에 문제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여기 생활을 하다보면 깨닫게 된다. 그중에 하나인 민주주의의 근간인 투표권에 대한 실상을 좀 들여다 보고자 한다. 미국정치 일선에서 후보로서 또 당선인으로서 지난 24년 간을 통해서 보고 듣고 경험을 통한 현황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미국의 선거투표 관련법들이 너무나도 허술하다고 말하지 않을수 없다.


먼저, 유권자 등록 절차부터가 문제다. 분명히 유권자 등록원서 자체에 기초적인 인적사항의 질문 외에 “시민권” 소지 여부를 묻는다. 당연한 질문이다. 시민권자 만이 투표를 할 수 있다는 법률이 있기 때문이다. 원서 안의 질문 중에 가장 중요한 질문 하나는 “시민권” 소지자이냐는 것이다. 시민권자만 투표할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시민권 소지 여부” 칸에 체크를 해서 자기가 사는 카운티 선거관리국이나 주정부 총무부 주소로 손수 제출하거나 또는 우편으로 우송을 하면 된다.


시민권자 여부는 본인의 양심에 맡길 뿐 증명서류 첨부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것까지는 좋다. 다만 원서접수 후에 그 시민권자 확인의 절차가 안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합법적인 모든 미국의 노동 대상자들에게 부여되는 소셜시큐리티 번호처럼 모든 시민권자를 확인하는 전국 시민권자 데이터 베이스가 있을법한데 그 자체가 아예 없다. 그러니 그 장부에 대한 대조 절차가 있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유권자 등록원서에 시민권 증명서 사본을 첨부하라는 요구 조건을 내걸 수도 없다. 왜냐하면 미국태생 미국인은

“시민권 증명서”라는 것 자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출생증명서 밖에 없다. 그렇다고 유권자 등록원서에 출생증명서나 이민해서 얻은 시민권 증명서를 첨부하라고 한다면 너무 번거롭다는 이유로 유권자 등록수가 급격히 떨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왜 National Registry of US Citizenship 즉 전국 시민권 등록대장 같은 것을 안 만드는 것인가? 요즘같은 디지털시대에서 만큼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연방정부는 아직 여기까지는 관심이 없다. 그러니, 현재 상황 속에서는 개인 양심에 맡기는 유권자 등록제도가 계속되니 첫 단추부터 잘 못 끼워져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하나 더 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2013년부터 운전면허시험만 통과하면 시민권이나 영주권 상관없이 아무에게나 운전면허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또, 여기까지는 좋다. 그러나 문제는 일단 DMV에 등록된 운전면허자에게는 시민권, 영주권 따지지 않고 유권자 등록을 하라는 “권고장”이 날라간다. 이때 본인의 양심으로 유권자 등록 자격여부를 따져야 할 일이지만 모든 사람이 준법정신 아래서 부정 유권자 등록을 하지 않는다고 보장할 길은 없다.


두 번째 문제는 선거당일에 투표장에 투표하러 나온 사람의 증명절차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름과 주소만 대면 본인인지 아닌지 확인도 없이 투표용지를 내준다. 이웃사람인지, 죽은 사람인지, 가명인지도 모르고 투표용지를 내준다. 이때 신분증이라도 요구를 하게 되면 투표방해자라고 캘리포니아에서는 법적으로 처벌받을 가망성까지 있다.


세번째의 문제는 투표방법에 있다. 나라가 크고 또 여러 특수 상황에 있는 유권자들이 많기 때문에 투표방법도 여러 가지로 제공한다. 즉, 선거당일 투표장에 나가서 본인이 직접 투표하는 재래식 방법과 우편투표 방법 외에도, 이제는 조기투표라해서 전자식 투표장소를 제한된 장소에서 선거일 29일 전부터 운영한다. 우편투표 용지도 선거일 29일 이전에 집으로 우송을 시작한다. 이 날자는 캘리포니아주를 기준으로 말하는 것이며 타주는 이 날자들이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투표기간이 약 한 달 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이 긴 투표기간이 문제가 된다며 이 제도를 수정해서 선거당일 단 하루로 만들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나는 이 주장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왜냐하면 선거후보 당사자로서 선거운동이 한창인 마지막 한 달 기간에 유세를 하러 다니다 보면 “I voted already”(나 이미 투표했어요)라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엄밀히 말해서 피투표자인 즉, 후보자는 그 금쪽같은 선거운동 기간을 박탈당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요즘같이 우편투표나 조기 전자투표하는 사람들이 전체의 절반이 넘고 있으니 내 시간과 선거비용(우송비, 재료비 등)의 50% 이상을 허비하는 결과가 나온다.


네 번째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즉, 정확하지 않은 유권자 Database와 Ballot Harvesting(투표지 수집)이라는 문제이다. 사람이 죽게 되면 카운티 서기에게 보고를 하게 되어 있어서 그 정보가 같은 카운티 내에 있는 투표관리국에 자동으로 통보가 되어서 그 이름을 유권자 명단에서 빼야 되는데 그것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사람이 죽은 후에도 계속해서 투표용지가 날라 온다는 사례가 많다. 또한 미국에서는 이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떤 사람이 타 지역이나 타주로 이사를 하게 되면 유권자 명단에서 빠져야 하는데 새 장소에서 다시 유권자 등록을 할 때까지 그나마 그 이후까지도 전 주소에 남아있는 유권자 명단이 정리가 안된다는 사실이다. 요즘같이 전자정보 유통이 빠르다는 세상에 살면서 이해가 안가는 일이다. 


더구나, Ballot Harvesting이라고 불리는 “투표지 수집”을 타인에게 하도록 허락한다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선거에 관심을 갖지 않거나 영어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공장이나 노인환자가 거처하는 양로원 같은 곳을 돌면서 서명만 해주면 알아서 좋은 사람에게 투표해서 보내겠다며 그 투표용지들을 수집하고 다녀도 합법이라는 것이다.


백지나 그에 가까운 투표용지들을 수집한 ‘투표지 수집원–Ballot Harvester’ 들은 무슨 목적으로 이렇게 수고하며 수집하고 다니며 그 수집된 투표용지에 어떤 투표를 해서 제출하는지는 아무도 모르나 그 결과를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종주국이라는 미국에 유권자 등록부터 투표까지 이러한 문제가 많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법을 개정 못하고 있는 것은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의 반발 때문이다. 명색이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유권자 협박(Voter Intimidation)이라는 이유를 내 걸고.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