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야기] "해피 밸런타인데이,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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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야기] "해피 밸런타인데이, 이모!"

웹마스터

제이슨 송

뉴커버넌트 아카데미 교장


코로나 때문에 찾아 뵐 수 없었던 이모님을 만나뵙고 왔다. 거의 50년 전 남편을 여의고 홀몸이 된 이모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언니다. 올해 아흔이시고 한국에 사시며 딱하게도 슬하에 자식이 없다. 그래서 우리 사형제를 자식으로 여기고 살아오셨다.


초등학생 때 용돈이 필요하면 나는 엄마보다 이모를 먼저 찾아갔다. 이모가 옆 동네에 살았기에 그럴 수 있었다. 그 때는 흑설탕 바른 왕사탕 하나를 십원에 살 수 있었기에 이모를 찾아가 십원을 달라고 졸라댔다. 그런데 이모는 쉽게 돈을 주지 않았다. 십원으로 뭘 살건지 밝히라며 요리조리 내 마음을 떠 보다 내가 끝내 "으앙"하고 우는 척 하면 "뚝 해야 십원 주지"하며 달랜 뒤 "옛다"하고 동전을 건네 주셨다. 왕사탕을 산 뒤 얼른 집으로 가라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동전을 움켜쥔 나는 금방 울음을 그치고 쏜살같이 길 건너 구멍가게로 달려가 왕사탕을 사 입에 쏙 넣었다. 구멍가게 주인 아주머니는 "또 이모한테 십원 타러 왔구나"라며 웃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번은 이모에게 500원이란 거금(?)을 달라고 졸랐다. 만화가게에 가기 위해서였다. 이모는 평상시 같이 돈을 어디에 쓸 것이냐고 물었다. 난 그냥 쓸데가 있다고, 그냥 주면 안 되냐고 짜증을 냈다. 하지만 돈을 어디에 쓸 것인지 밝히지 않으면 절대 주지 않겠다며 이모는 500원짜리 동전을 손바닥 위에 보여 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모의 전략이었다. 그 동전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직감한 나는 만화가게에 가고싶다고 실토했다.  


이모는 "야, 니 엄마가 이모가 돈을 줘서 만화가게에 갔다는 걸 알면 무슨 소리를 할 줄 뻔히 알면서 어떻게 돈을 주냐"라고 하셨다. 나는 절대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겠다고, 한 번만 믿어 달라고 애걸복걸했다. 이모는 그러는 나에게 조건을 제시했다. 딱 한 시간만 만화가게에 갈 것, 그리고 절대 숙제를 안 하거나 성적이 떨어지지 않을 것을 약속하라고 했다. 500원을 손에 넣어 만화가게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약속하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어기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모는 필자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 이 상황(?)을 알렸고 너무 나무라지 말라고, 애들이 크면서 다 그런 거라고 하셨단다. 


1978년 어머니의 병환으로 미국이민을 택할 수 밖에 없던 우리 가족은 이모와 작별해야 했다. 자식같이 여기던 조카 넷과 뼈밖에 남지않은 동생이 먼 타국으로 이민 갈 때 얼마나 힘드셨을까? 공항에 절대 안 가겠다고 버티던 이모는 친구분들의 성화 끝에 공항까지 배웅 나오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을 방문하면 이모는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시고 손수 식사를 차려주신다. 청국장, 낙지볶음, 초고추장을 발라 구운 뱅어포, 부침개, 고기전, 나박김치, 조기 등 맛있는 건 다 준비하신다. 이모의 밥상은 음식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다. 보고 싶었다, 사랑한다란 마음이 푹 담겨있다. 


이번엔 근사한 곳에서 외식으로 대접해 드리고 싶었는데 또 진수성찬을 차려 놓으셨다. 내가 오이소배기 생각이 난다는 말을 들은 이모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가 오이를 사 소배기를 담아 놓으셨다. 아직 덜 익은 오이소배기 한 접시를 상에 얹으시며 "익지 않아서 어떡하지"라고 하셨다. 팽~하고 눈물이 돌았다. 나는 왜 추운데 굳이 소배기를 담궜냐고, 괜찮다고, 맛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접한 저녁식사는 엄마의 손, 엄마의 따뜻함 같았다.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은 항상 무겁다. 여러 번 무릎수술을 하셨기에 층계를 오르고 내릴 때 통증이 심할텐데, 추운 날씨에 혼자 어떻게 병원에 다니고 어떻게 잘 견디실지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지금까지 씩씩히 잘 견디고 이겨온 이모님을 하나님이 잘 지켜주시리라 믿고 꾸벅 인사드린 뒤 휙 돌아섰다. "이모, 사랑해요. 또 다시 올께요"라고 인사드린 뒤 색안경을 쓴다. 눈물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아서다. 


“잘 가라. 어멈한테 잘 해 줘라. 사랑한다!”라고 이모는 말씀하시고, 난 “네, 그럼요. 잘 하고 있어요. 어서 들어가세요”라고 답한다. 작별할 때마다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메인다. 그렇지만 신앙이 있으셔서 감사하다. 천국에서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은 큰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벌써 2023년 첫 달이 휙~ 지나가고 밸런타인데이가 찾아왔다. 아내에게 좀 미안하지만 올해 나의 밸런타인은 이모다. 그래서 꽃도 보내고 용돈도 드리고 사랑한다고 말해야겠다. 해피 밸런타인데이,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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