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행복칼럼] 오헤어공항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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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의 행복칼럼] 오헤어공항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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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 목사 

생명의 빵 나눔 운동 대표 

   

동부출장을 계획하면서 시카고 오헤어공항을 경유하기로 했다. 오헤어공항은 교통량이 많고 시카고의 날씨도 좋지 않아 연착율이 높다. 개인적으로 여러 번 고생했고 한동안 오헤어공항 사용을 기피했다. 그런데 이 ‘오헤어공항’의 명명 이유를 알면서 이 공항을 밟기로 맘먹었다. 


오헤어국제공항의 이름에는 2차 대전 전쟁영웅의 삶이 담겨 있다. 2차 대전이 발발할 때 오헤어(O’Hare) 중위는 해군전투기 조종사로 남태평양 렉싱턴 항공모함에서 임무수행 중이었다. 어느 날 작전명령을 받고 이륙할 때 연료 계기판을 보고 연료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정비담당자의 실수로 연료보충이 안 되어 임무완료 후 복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헤어 중위는 이를 편대장에게 보고하고 항공모함으로 복귀하였다.

   

홀로 모함으로 돌아가던 오헤어 중위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일본군의 대규모 비행편대가 모함을 공격하러 저고도 비행 중에 있었다. 아군 전투기들은 모조리 출격해 모함(母艦)은 완전 무방비 상태였다. 소속 편대에 연락할 시간은 당연히 없었고, 심지어 모함에 있는 수군들에게 위험을 경고할 수도 없을 정도로 긴박한 상황이었다.

   

오헤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든 모함으로 향하는 일본 비행기의 기수를 돌리게 하는 것뿐이었다. 그는 바로 일본 비행편대를 향해 하강해, 날개에 탑재한 50인치 기관포를 내뿜으며 적기를 차례로 공격했다. 모함으로 접근하는 적기를 향해 총탄을 퍼부었다. 오헤어는 필사적으로 적기들이 항공모함에 이르지 못 하도록 막았다. 마침내 오헤어의 공격에 당황한 일본 비행편대는 기수를 돌렸다. 오헤어 중위 혼자 대규모 공격을 저지했다.

   

오헤어는 겨우 그의 전투기와 함께 항공모함으로 돌아왔다. 그는 상황을 자세히 보고했고, 그의 비행기에 탑재된 카메라의 필름이 전투상황을 밝혀 주었다. 오헤어 중위 홀로 싸워 모함과 거기에 있었던 장병 2800명을 구했던 것이다. 적기 9대를 혼자서 물리치고 항모에 착함한 오헤어와 그의 애기(愛機) 주위로 장병들이 몰려와 환호했다. 오헤어가 몰았던 F-15호기는 좌측 날개에 총알구멍이 있었다. 목숨 걸고 싸웠던 것이다

   

오헤어는 이 공로로 의회 무공훈장(Congressional medal of honor)을 포함한 다수의 훈장을 받았고, 중위에서 소령으로 특진했다. 오헤어 소령은 훈장을 받고 1년 뒤, 한 전투에서 애기(愛機)와 함께 장렬히 산화했다. 1945년 6월 미 해군은 새로 진수된 구축함(Gearing-class destroyer)을 USS 오헤어(USS O'Hare) 라고 명명하며 그의 영웅적인 삶을 기렸다.

   

그의 고향 시카고는 2차 대전 영웅 오헤어 소령을 오래 기리기 위해 시카고 ‘오차드 디포트 공항(Orchard Depot Airport)’을 '오헤어 국제공항(O'Hare International Airport)'으로 명명했다. 1949년 9월 19일에 있었던 일이다. 사연을 알고 나서 오헤어공항에서 눈과 비를 만날 때 오헤어 소령(Lieutenant Commander)이 겪은 폭풍과 총포탄을 생각한다. 

   

어떤 삶이건 위기가 있다. 위기에서 자신의 안전과 유익만 생각하면 졸장부다. 그러나, 위기에서 이웃을 돌아보면 영웅이다. 오헤어 소령은 그 위기의 순간에 동료와 조국을 생각했다. 금번 출장은 오헤어공항을 거쳐 지나가며 오헤어 소령의 찬란한 희생과 헌신을 다시 가슴에 담으려 한다. 비록 거친 날씨로 한 번 더 고생을 한다고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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