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백제, K-공예의 원류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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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백제, K-공예의 원류를 찾아서

웹마스터

김희식

(주)건축사무소 광장 상무 


요즘 한국의 두 국립박물관에서는 백제유물 관련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백제기술, 흙에 담다’라는 타이틀로 전시가 열리고 있는 부여박물관과 ‘백제 귀엣-고리 특별전’의 공주박물관입니다. 백제 도읍지였던 두 곳을 돌아 본다면, 도읍 순서대로 공주-부여 順이 좋으리라는 생각도 했지만 첫날은 폐막일이 임박한 부여 쪽부터 먼저 방문했습니다.  


아산-대전-논산을 거쳐 도착한 부여는 알려진대로 지금으로부터 약 1500년 전 백제의 도읍을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옮긴 곳이기도 합니다. 부여터미널에 당도하니 칼바람과 함께 흰 눈이 날리고 있었습니다. 요즘은 수도권이나 지방 대도시뿐만 아니라 산간벽지, 외곽도시 어딜가나 고층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습니다. 부여도 예외없이 한 쪽에는 밀집된 아파트 주거단지가 눈에 띕니다만 전반적으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백제의 수도라기보다는 작은 시골 읍내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거리 한 가운데 5층 석탑으로 유명한 정림사지(定林寺址)를 거쳐 부여박물관에 당도했습니다. 전시관 내부에는 ’흙’ 재료에 주목했던 백제인의 흙 다루는 기술과 소조성(塑造性), 예술성의 재발견을 주제로 한 소장품들이 진열돼 있었습니다. 흙을 매개로 주변국가와 교류한 발자취를 살펴보는 상세지도도 나와 있더군요. 전시품 중에는 종류와 크기가 다른 다양한 토기들 이를테면, 건축용 기와, 무늬벽돌, 부뚜막, 상하수도관 등 생활에 밀접한 용품과 흙을 구워만든 토제품도 포함돼 있습니다. 


뚜껑이 있는 굽 달린 사발, 손잡이 달린 그릇 등 정선된 흙으로 빚은 회백색의 토기들도 나와 있는데 유약없이 구워 낸 토기들도 눈에 띕니다. 호자(虎子)는 표면에 세밀한 표현은 생략되었지만 앞다리를 세우고 입을 벌린 익살스러운 호랑이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토기입니다. 일설에 의하면 간이용 소변기로 사용되었다고도 하더군요.(엄기표, 다시 찿은 백제문화, 2005).


당시 백제인들은 이러한 토제품을 만들 때 실용성, 편리함 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흙으로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즐거움도 함께 담겨 있음을 짐작케 합니다. 흙으로 만든 토우(土偶)도 있습니다. 출토된 유물 중에는 흙을 구워 만든 손, 발, 얼굴 등 인체에 관한 소조품들도 등장합니다. 주 재료인 흙(태토, 胎土)을 지푸라기와 왕겨를 섞어 반죽하고, 갈대와 나무를 사용해 만든 골조를 내부에 집어 넣은 것도 컴퓨터 단층촬영(CT)를 통해 보여줍니다. 밤톨 만한 크기의 미니어처 얼굴도 나와 있는데 얼굴에 표현된 미소가 그럴 듯 합니다. 특히 불상에 나타난 얼굴들이 사람들과 친숙해 보입니다. 넉넉한 얼굴살과 활짝 웃는 모습과 은근한 미소는 부처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풍모를 느끼게도 합니다. 


이어서 찿아간 곳은 공주국립박물관입니다. '백제 귀엣-고리 특별전’이라는 타이틀로 열린 전시였습니다.귀엣고리는 귀고리의 옛말입니다. 지금은 ‘귀걸이’를 주로 쓰지만 '귀고리'를 더 오랫동안 표준어로 사용 했다고도 합니다. '백제 귀엣-고리’는 백제 복식의 핵심이면서 삼국시대 동아시아 문물교류의 생생한 증거라는 박물관 측의 설명도 있었습니다. 


평소 귀걸이는 여성들의 전유물인 줄 알고 있었는데, 백제 여성은 물론, 당시의 남성 및 주변국 사신(

使臣)들도 장신구로 귀걸이를 착용했음이 이번 고증을 통하여 알게 됐습니다. 특히 박물관 인근에 자리잡은 송산리 고분들과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각종 귀걸이 및 장신구들이 다량으로 소장되어 있었습니다. 스파이크 형태의 밑창으로 된 금동 신발 등 50여 종 500여 점의 출토유물이 함께 전시되어 1500년의 세월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세공기술이 뛰어났던 백제인들의 손재주가 대단해 보입니다. 섬세하면서도 때로는 과감한 디테일의 생략이 작은 귀걸이 하나에도 반영되어 있는 듯 하더군요. "백제의 아름다움은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대목이 생각났습니다. 


얼마 전 서울 시내 안국동 네거리를 지날 때, 낯선 건물이 눈에 띄었습니다. '서울 공예박물관’입니다. 종전에 풍문여고 캠퍼스로 사용하던 건물이 외관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대형 공예박물관으로 바뀐 것입니다. 상설전시는 물론, 주말이면 박물관 인근 골목에서는 젊은 공예가들이 직접 만든 공예품들을 선보이기도 하고, 주변의 공방(工房)들을 공개하던 일이 기억됩니다.


눈 덮인 박물관 마당을 나서면서 백제시대의 상상력과 미적(美的)감각의 솜씨가 K-공예의 원류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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