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밥과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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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밥과 김치

웹마스터

대니얼 김

제너럴 컨트랙터


“지난 번 가져 간 김치통을 왜 안 가지고 왔어요?” 깝빡 했네, 다른 그릇에 담아줘요.” 새로운 김치통에 김치를 담아 건네주며 아내의 핀잔 겸 한마디 하는 소리를 듣고 말았습니다. 주중에는 지방(地方) 현장에 머물다가 주말이 되면 서울집에 다녀올 때 가끔씩 일어나는 일 입니다. 


현지 마켓에서 포장된 김치를 사서 먹으면 좋으련만, 집에서 담근 김치맛에 익숙하다 보니 주말마다 집 김치를 들고 오는 경우가 여전했거든요. '아직도 집 김치를 고집하다니 한심한 일이구만’ 하실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김치를 현장 인근 숙소의 부엌까지 들고 오는 것도 일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녁식사 한 끼 정도는 숙소 부엌에서 셀프쿠킹으로 해결할 때가 많기 때문이죠. 


김치를 챙겨오는 날 저녁 식탁은 평소처럼 루틴하게 갓 지어낸 밥 한 그릇과 김치가 주 메뉴입니다. 밥은 一人用 전기밥솥에다 짓습니다. 목 마른자에게는 물 한 그릇이 최고의 성찬(盛饌)이 듯이 시장할 때는 갓 지어낸 밥과 김치의 조합도 꽤 괜찮은 상차림 일 것입니다.


얼마 전 보도에 의하면 가정용 전기밥솥도 이제는 수요가 줄어들어 업체들이 생산을 기피하기도 하고, 신혼살림 장만 아이템에서도 빠져나가는 추세라고 합니다. 인구감소, 노령화, 쌀 소비 감소, 간편식 햇반의 소비증가 등이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와 있습니다. 70,80년대 초만 해도 일본산 ‘코끼리표’ 밥솥 인기가 대단했었습니다.


해외근로자들이나 일본 관광길에 나선 여행객들이 귀국 때면 핫 아이템인 전기밥솥 한 두개는 대부분 들고 들어왔었습니다. 중동發 김포着 수화물 검색대 앞에서는 이색적인 진풍경도 벌어지곤 했습니다.해외 근로자들 중 일부는 한 사람이 서너 개씩 양손에 사들고 온 밥솥 때문에 수하물 검사대 앞에서

별도의 긴 줄을 만들어 세금부과하는 동안 체벌받 듯 늘어 선 광경도 흔할 때였습니다.


한편으로 밥과 떼어 놓을 수없는 발효식품인 김치를 미생물학적으로 분석한 글을 읽게 됐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김치가 발효되는 동안의 시간들을 음악적 요소로 접근한 글이었습니다. "김치는 발효과정에서 미생물이 살아 움직일 시간이 필요한 음식입니다. 그래서 김치를 먹는다는 것은 미생물을 장에서 활성화시키고 장을 춤추게 하는 시간과 같습니다. 김치의 발효시간을 형상화 할 수 있는 도구가 있다면, 반음계와 온음계, 리듬과 박자로 미생물의 춤과 노래를 그려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리토르넬로(Retornello 후렴구)’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음악적 요소에서 시간적으로 차이나는 반복현상을 밝히는 개념으로, 시간이 갖고 있는 독특한 화음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을 하거나 일상을 살아가고

낮과 밤의 운행에 따라 생활할 때, 삶은 단순한 반복, 강약이 아니라 일정한 화음괴 리듬에 따라 움직입니다. 마치 추임새를 넣어 리듬을 주듯이 후렴구인 리토르넬로 현상이 나타납니다. 달리 말하면 미생물과 같은 생명체의 화음이 숨어 있습니다. 하모니로 가득찬 시간이며 온 몸이 들썩들썩해지는 시간입니다.


일상의 시간이 지굿지긋한 반복이라고 중얼거리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매일 반복되는 출퇴근, 낮과 밤, 세 끼의 식사 속에서 어떤 화음도 발견할 수 없다고 읇조리는 사람에게 리드미컬한 삶의 화음을 선사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춤과 화음을 느낄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요. 지금처럼 햄버거, 콜라 등 스테레오타입화 된 입맛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지역 특유의 리토르넬로는 끊임없이 사라져 가고 맛의 이색적인 향연이 가능하게 될 특이한 삶의 리듬은 실종됐습니다. 똑딱거리며 반복되는 시간과 일과표는 반복 강박과 같이 특이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의 배치를 잠식해 들어갑니다. 아주 특이한 리토르넬로가 가장 아름답고 이채롭고 세상을 다양하게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김치의 리토르넬로와 같은 시간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신승철 著, 식탁 위의 철학 15쪽, 2013).


먼저 언급했던 밥도, 뜸 들 무렵이면 전기밥솥의 모드가 바뀌면서 서서히 열기를 내리고 여유를 갖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어쩌면 밥이 뜸 들며 익어가는 시간을, 차차 약하게 하면서 느리게 연주하라는 음악용어 ‘리타르단도(Retardando)’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하여 발효의 시간인 ’리토르넬로’와 뜸 들이는 시간인 ‘리타르단도’가 함께 모여 일상의 추임새를 때로는 흥겹게, 혹은 여유롭게 만들어 주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 저녁은 식탁 위에 올려진 갓 지어낸 밥과 김치를 새삼 음미해 보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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