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새해 리셋(Re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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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새해 리셋(Reset)

웹마스터

대니얼 김  

제네럴 컨트랙터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묵은해를 보낸다고 그리 아쉬워 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새해를 맞을 때면 매 번 하는 일들이 있지요.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 보는 것, 올해에는 무엇인가를 어떻게 해야지 다짐하는 것들 입니다. 다소 강박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오랜 습관처럼 몸에 밴 일이기도 합니다. 즈음하여 완충역할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가까운 어디라도 다녀오는 것, 한 발 물러서서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곳을 찿는 것도 이맘 때의 습관입니다. 


코로나 이전, 어느  새해, 눈 내리는 홋가이도 죠잔케이, 나고야 게로, 큐슈 벳부온천 등을 찿은 적이 있습니다. 큐슈 벳부에서 머문 후, 홋가이도까지 단숨에 온천을 찿아 떠났던 길이었습니다. '온천 집중 메구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메구리'라는 말을 한일사전에서 찿아보니 “여기저기 이어서 찿아가기, 한 바퀴 돌아보기”등으로 풀이돼 있더군요. 


금년 새해는 정월 초하루만 휴일입니다. 그래서 이번엔 몸 담고 있는 아산 공사현장 인근의 온천들을 돌아보기로 작정하고 일찌감치 길을 나섰습니다. 도고와 덕산온천 두 곳을 하루에 돌아보는 ‘湖西지역 온천 메구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여 마일 거리를 두고 나란히 위치한 두 곳을 찿아가는 길 주변에는 충청도 특유의 적당한 높이의 산등성이들이 즐비합니다. 차창너머로 연이어 나타나는 산들이 흰 눈에 덮힌 채, 능선의 윤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고의 도고산-신례원, 예산의 덕봉산-덕산 가야산 등의 겨울산들 입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어느 평범한 직장인의 글을 읽었습니다. 저자 김선우는 한국의 일간지 기자로 12년을 일했던 사람입니다. 그가 십여 년 전 직장을 사임하고 시애틀의 시골로 들어가 농부생활을 시작하면서 쓴 책입니다. 그 중 일부를 이어봅니다. 

"치열하게 맡은 일을 매일 마감하고 모든 일을 정해진 대로 빠르게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업무수행의 평가기준이 되었던 시절, 그런 사람이 잘 나갔고 그런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 성공했으며 그런 조직이 모여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지요. 다른 방식은 존재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 방식에 토를 달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고 전진했으며 의견이 다른 사람은 그냥 무시해야 했죠. 그러다가 기자일을 그만두고 미국 시골에 와서 농사를 짓고 책을 읽으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치열했던 삶의 자리에서 블루베리와 사과나무 묘목을 심고 깻잎과 토마토를 가꾸는 삶으로 바뀐 거죠. 멈추며 사물을 찬찬히 대하면서 관점이 달라지자 오히려 느리게 걷는 삶이 참으로 괜찮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한 꺼플만 벗겨보면 겉보기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조금만 깊이 들여다 봐도 이전과는 다른 시각에서, 세상의 다양한 면을 즐길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아울러 다른 관점에서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이야기에 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하게 되었죠.”(지속가능한 삶을 모색하는 사피엔스를 위한 가이드, 김선우, 2021). 


위의 글을 반추하면서 필자도 지난 해 아쉽게 느껴졌던 시간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영국의 철학자 ‘버나드 윌리엄스’의 기질(氣質)에 관한 이론에 의하면 “사회에 순응하고자 하는 자아와 우리 정체성의 고유한 핵심은 어떤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 각자가 가진 실존적인 임무는 억압된 기질을 감옥에서 풀어줄 수 있도록 자기만의 진리를 밝히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가치있는 삶, 33쪽, 이현경 譯, 을유문화사, 2022). 


자아 아닌 기질의 형태 중에는 결핍감이라는 기질도 있을 것입니다. 물리적인 결핍보다는 마음 속 기질의 상태, 떠밀려 나아가는 것을 지칭한다고 할까요. 필자도 겪었던 결핍의 시간들이 생각났습니다. 결핍의 기질은 시간에 쫓기듯 여유와 부요함을 잊은 채, 서둘렀던 시간들의 형태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급하게 처리하고 후회하는 일들을 초래하는 것도 그 중 하나일 겁니다. 


오래 전 이민초기 시절, 북가주 공사현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점심도 건너 뛰며 분주하던 때, 여러 일에 휘둘려 주유소를 그냥 지나치다 대로변에서 연료가 바닥났습니다. 당연히 차가 멈췄습니다. 연료 저장 눈금이 작동하지 않는 깡통 밴 탓도 있었지만 쫓기 듯 일하는 결핍의 시간들이 원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여전히 남아 있을 일말의 결핍 기질로부터 벗어나 때때로 멈추고, 호흡하고 좀 느리게 살아 볼 요량입니다. 시간을 대하는 관점을 달리하면서 ‘결핍의 기질에서 여유와 부요의 기질로 변환’하려는 한 해가 이미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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