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아의 수필로 쓴 세상] 내가 장애인이 되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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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의 수필로 쓴 세상] 내가 장애인이 되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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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

수필가



교회에 가서 내가 앉는 자리는 출입문과 가까운 자리입니다. 예전엔 훈련된 왕실 신장을 가졌다고 해서 로열 키드니(royal kidney)라 불릴 정도로 하루 종일 생리현상을 참을 수 있었는데, 요즘은 예배시간이 길어지면 염치불고하고 중간에 한 번 화장실을 다녀와야 합니다. 한 시간 반 정도의 참을성만 나의 방광이 허락하기 때문이지요. 전에 받던 신장 투석으로 인해 방광의 용량이 줄어든 탓입니다.


출입문 가까운 곳은 장애인 전용좌석입니다. 앞자리의 청년은 가끔 설교시간에 큰 소리를 내기도 하고 몸을 혼자서 잘 가누지 못합니다. 엄마의 시선은 늘 청년을 향하고 잠시도 눈을 떼지 않습니다. 옆자리엔 다리가 불편한 꽃미남 청년도 있습니다. 예쁜 엄마는 늘 미소를 잃지 않고 아들을 돌봅니다. 오랫동안 아픈 7살 꼬마도 있습니다. 젊은 엄마가 찬양팀에서 봉사를 하는 동안 교인들은 돌아가며 그 아이의 유모차를 밀고 돌봅니다.


장애인 자리에 앉아 예배를 보면서 유심히 그들의 부모를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볼 때마다 눈시울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더워옵니다. 어디선가 나직이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보기에 참 좋구나. 그동안 애 많이 썼다. 고맙다." 잠시 맡긴 아이를 잘 돌봐주었다고 칭찬하는 소리가 하늘에서 내려온 듯 내 귓전을 스칩니다. 바람결에 들려온 환청이었을까요. 그 마음의 소리는 부모의 가슴을 적시며 조용히 위로하였을 것입니다.


지난한 세월을 견디고 나면 웃음도 되찾게 되나봅니다. 아이의 작은 변화에 기뻐 어쩔 줄 모르는 젊은 엄마를 봅니다.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아들 자랑을 하면 나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쉬게 됩니다. 얼마만큼의 고통을 견디어 내야만 저리 투명한 얼굴로 기꺼이 손뼉을 칠 수 있을까요?


이번 여행에서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공항에서 휠체어 서비스를 부탁하면 아주 편하게 심사대를 통과하고 기내의 출입에도 우선권을 줍니다. 크루즈 배에서도 온갖 편의를 제공받고, 여행지의 길고 긴 화장실 대열에서도 맨 앞 순서를 부여받습니다. 관광버스에 오르내릴 때에도 운전기사와 가이드의 에스코트를 받습니다. 온 마을사람들이 한 명의 장애인을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배려합니다.


선천적인 장애는 사람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타고난 것입니다. 후천적인 장애도 사람의 부주의나 사고일망정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장애를 원해서 장애인이 된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지요.


오른쪽 무릎에 인공관절을 넣고 미국에서 핸디캡 판정을 받았습니다. 신장 이식 수술을 한국에서 받고나서 회복도 되기전, 엎친데 덮친다고 세군데의 척추 압박골절을 당해 한국에서 복지카드를 발급받은 글로벌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키는 줄어들고 허리통증은 평생 달고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어쩌지 못하는 것은 신의 영역일 테니, 신의 손길이 미처 닿지 못한 이들을 돕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인간의 도리이자 신을 돕는 숭고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장애인이 되어보니 잠시나마 그들의 입장을, 그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보게 되었습니다. 이래서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하나 봅니다.


감사의 계절입니다. 무탈한 하루 하루를 살 수 있음이 기적이고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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